千年 王城 베이징(北京)의 역사와 중요 문화유적, 상하이의 경제력
- 최초 등록일
- 2010.07.09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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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千年 王城 베이징(北京)의 역사와 중요 문화유적, 상하이의 경제력
목차
主題 1> 千年 王城 베이징(北京)의 역사와 중요 문화유적
1. 베이징의 歷史
2. 중요문화재
천안문
1) 천안문(天安門)
2) 자금성(紫禁城)
3) 만리장성(萬里長城)
4) 천단
主題 2.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역사와 경제력 및 한국 관련 유적과 부산 청관마을 비교
1. 상하이의 역사와 경제력
1) 상하이의 역사
2)상하이의 경제력
2. 상하이도심의 한국 관련 유적과 부산 청관마을
임시정부청사(상해)
1) 한국관련 유적(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2) 루쉰 공원(鲁迅公园)
3) 청관거리(상해거리)
본문내용
1. 베이징의 歷史
선사시대에 베이징 주변지역은 최초의 인류들이 살고 있었다. 1918~39년 50만 년 전에 살았다고 하는 베이징 원인과 5만 년 전에 생존했던 상동인(上洞人)의 화석이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약 48km 떨어진 저우커우뎬에서 발견되었다.
전국시대(BC 475~221)에 (燕)은 계(薊)라고 하는 도읍을 이곳에 세웠다. 이것이 베이징 지역에 들어섰던 최초의 수도이다. 당대에 이 지역은 유주(幽州)라고 불리었다. 당이 멸망하자 거란족은 유주를 파괴한 뒤 요(遼:947~1125)를 세우고 거의 같은 위치에 그들의 수도 가운데 하나를 정했다. 그들은 이곳의 수도를 남경(南京)이라고 불렀다. 12세기 중엽에 여진족(女眞族)이 요나라를 멸하고 금(金)나라를 세웠다. 요의 수도는 중도(中都)라는 이름의 새로운 금의 수도로 재건되었다.
칭기즈칸의 후계자 쿠빌라이 칸(1215~94)이 중국 전역을 차지한 뒤 원나라를 세웠다. 그는 베이징에 새 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267년 이곳에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신도시가 건설되어 행정수도가 되었다. 몽골족의 지배하에서 베이징은 처음으로 중국 전역을 포괄하는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대도는 역대의 어떤 도시보다도 큰 규모로 건설되었는데, 외성의 길이가 30km 정도였으며 52㎢가 넘는 지역을 에워싸고 있었다. 양쯔 강 이남의 지역에서 공물로 걷어 들인 쌀을 베이징 성 안의 새로운 인공호수까지 운반하기 위해 운하(퉁후이[通惠] 운하)를 파서 대운하와 연결시킨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명(明:1368~1644)의 제1·2대 황제 재위기간에는 난징[南京]을 수도로 삼았으며, 전대의 수도였던 대도는 베이핑[北平]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명의 제3대 황제는 베이핑을 다시 수도로 삼고 베이징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베이징은 국민정부가 난징을 다시 수도로 삼았던 짧은 기간(1928~49,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충칭[重慶]으로 천도)을 빼고는 약 700년간 거의 중단 없이 중국 수도의 자리를 지켜왔다. 면적은 17,900㎢, 인구 5,568,300(1989)명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