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평가방법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0.07.24
- 최종 저작일
- 2010.06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인촌 김성수의 사례를 통한 인물 평가방법 고찰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서론
제1시기
제2시기
제3시기
제4시기
결론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인촌 김성수만큼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드물 것이다. 김성수는 한말 애국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교육과 언론, 각종 사회 문화 활동, 산업진흥운동, 정치 등의 활동을 하며 민족의 실력양성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김성수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적이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보면, 그는 일제의 통치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은 채 그 아래서 종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전개해 나아갔고, 따라서 그의 민족주의 운동은 대중 운동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은, 교육, 기업, 언론 등을 통한 그의 민족 운동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수가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귀국을 한 이후부터 그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기인 1915년에서부터 세상을 떠나는 1955년까지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각 시기별로 김성수의 활동양상 변화가 뚜렷한데, 이는 김성수의 생각이나 신념의 변화가 없이는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각 시기별로 그의 행적을 나누어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김성수의 생애와 활동을 각 시기별로 알아보고, 각 시기에 그는 어떠한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Ⅰ. 제1기(1915~1923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 김성수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교육운동이었다. 1915년 운영난에 빠진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근대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하며 학교운영을 근대적, 합리적으로 바꾸어, 직접 영어와 경제를 가르쳤으며 특히 한국어 교습이나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 민족교육을 자리 잡았다. 이후 1917년에는 교장으로 취임을 하게 되는데, 이는 뒤의 보성 전문 인수와 고려대학교의 설립으로 그 활동을 지속해 나가게 됨으로서 교육활 동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었다.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의 교육이 앞서야 한다는 믿음으로 키워왔던 민족교육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같은 해 경영난에 처해있는 조선인 중소기업가등이 합자하여 운영하던 소규모의 직조회사였던 경성직뉴 주식회사를 인수하여 운영하였고, 1919년부터 중앙학교 숙직실을 본거지로 하여 독립운동을 펼칠 방책을 꾸미는데 이는 1919년 3월 1일 3.1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1920년에는 일본의 문화정책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그의 정치적 기반으로써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아일보를 창립하는데 이는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회유정책의 일환으로 이때 일제가 조선인에 대해 3개의 신문발행을 허가하였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