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한 친제설과 친제협찬설의 근거
- 최초 등록일
- 2010.07.28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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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본 론
1.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배경
2. 친제설의 근거
3. 친제협찬설의 근거
3-1. 또 다른 협찬자들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한글 창제를 누가 하였는가? 나 역시 공부할 때부터 궁금했던 점이었다. 국어사를 예습하면서 이 연구문제를 보았을 때, 이 문제가 과제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과제에 선정되니 한편으론 즐겁게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한글 창제에 대해선 친제설과 친제협찬설 즉, 세종이 주도하되 집현전 학사들의 보필이 있었다는 것으로 양분되어있다. 친제설에 대해선 홍기문(1946)과 이기문(1992)등의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고, 친제협찬설에는 이숭녕(1958), 강신항(2003), 안병희(2007), 이성연(1994)등의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두 학설은 사료에만 의존하느냐(친제설), 사료와 함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느냐(친제협찬설)에 따라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데, 자료의 부족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든 실정이다.
그럼 앞으로 이 두 학설이 어떠한 사실에 근거하여 주장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파헤쳐 볼 것이다.
본론
1.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배경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는 <훈민정음예의서>에 세종의 애민정신에서 나왔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입장에서 한번 돌아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명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유미림(2005)에 나온 그 배경에 대해 말한다면, 세종은 통치 목표를 국가의 모든 문물제도가 유교적 이념 아래 편제되는 일종의 ‘유교국가’화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민간이나 관료들조차 불교나 민간신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 국가를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성리학의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각종 간행사업을 펼쳤다고 한다. 또한 문란해진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고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여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하였지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이를 위해 피지배층을 교화시키는 보다 좋은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이기문, 「훈민정음 친제론」,『한국문화』13,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 구소, 1992
안병희, 『훈민정음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이성연,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언어문학 32, 1994
유미림,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 동양정치사상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