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순수비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0.08.16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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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흥왕 순수비의 종류와 그내용에 대해 조사한 글입니다.
목차
ㆍ진흥왕 순수비란?
ㆍ순수비의 내용
(1)북한산비
(2)창녕비
(3)황초령비
(4)마운령비
ㆍ후기
본문내용
(4)마운령비
마운령비는 1929년에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의 운시산(雲施山)에서 발견되었다. 비신의 높이는 165㎝, 너비 65㎝, 두께 약 30㎝이고, 건립연대는 568년(진흥왕 29)이다. 이 비석은 검은색을 띤 화강암을 다듬어 양면에 글자를 새겼는데, 앞면 10행에는 각 행에 26자, 뒷면 8행에는 각 행에 25자를 새겼다. 비문의 구성은 제기(題記), 기사(紀事), 수가인명(隨駕人名)으로 되어 있다. 제기에는 태창 원년에 진흥태왕이 순수했을 때 세운 것임을 밝혀져 있어 마운령비의 건립연대를 알 수 있다. 기사부분은 대체로 황초령비와 같으며, 수가인명도 황초령비와 대략 같으나 결자가 적어 황초령비의 결락부를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황초령비에 보이는 직명 외에도 `급벌참전`(及伐斬典), `내부통전`(奈夫通典), `외객`(外客) 등의 직명이 보이는 것은 당시 국왕의 근시조직을 아는 데 참고가 된다.
ㆍ후기
진흥왕순수비를 조사하다가 문득 북한산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북한산비의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비석이 있는 위치에서 바라보면 한강의 하류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다면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 진흥왕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치열한 전투들이 일어났고, 또한 중심 지역이었던 한강유역을 신라의 왕으로써는 처음으로 차지하고, 그곳에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나라의 비석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원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했던 요충지를 점령한 왕으로써는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비석을 세우면서 자신이 직접 순수했을 때의 마음이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뿌듯하고 가슴 벅찬 일이니 당사자의 입장은 아마 나보다 몇 배는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세 곳의 비석들도 북한산비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지고 직접 순수했을 것이다. 아직 직접 내눈으로 본 것은 창녕비밖에 없지만, 조만간에 북한산비도 직접 찾아가서 보고 그 뿌듯한 감정을 새롭게 느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