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유사의 언어관
- 최초 등록일
- 2010.09.09
- 최종 저작일
- 2008.09
- 2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계림유사에 나타난 언어관에 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I. 언어관이란
II. 계림유사에 나타난 언어관
1. 계림유사
2. 계림유사의 자료상의 의미
3. 계림유사에 나타난 언어관
III. 결론
※ 붙임
본문내용
1. 계림유사
1) 계림유사
중국 북송의 손목(孫穆)이 편찬한 일종의 견문록이며 대역 어휘집이다. 저자가 고려 숙종 8년(1103)에 서장관으로서 사신을 수행하여 고려에 와, 당시 고려조의 조제(朝制)ㆍ토풍(土風)ㆍ구선(口宣)ㆍ각석(刻石) 등에 대한 견문록과 함께 고려어 약350여 어휘를 채록하여 3권으로 분류ㆍ편찬한 책이다.
송대의 <중흥관각서목(中興館閣書目)>과 <수초당서목(遂初唐書目)>에 의하면 <계림유사(鷄林類事)> 단행본이 전래되다가 1366년(元代至定)> 이전에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設郛)>일부가 절록(節錄)된 뒤 소실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계림유사>는 원래의 단행본은 전하지 않고 절록본으로서 전해지고 있는데 <설부>외에도 중국의 총서인 <오조소설(五朝小說)>ㆍ<오조소설대관(五朝小說大觀)>ㆍ<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과 우리나라 정조 때 한치윤(韓致奫)이 지은 <해동역사(海東繹史)>등에 실려 전한다. 지금까지 이들 판본에 따라 발견된 <계림유사>의 이본은 약20종이 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고본(古本)으로는 홍콩대학 풍평산도서관(馮平山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는 명대(明代) 가정 연간(嘉靖年間) 설부본(設郛本)과 대만국립중앙도서관(臺灣國立中央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는 설부본을 들 수 있다. 현전하는 <계림유사>의 체제는 각 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명대 필사본을 중심으로 종합하여 보면 표제 부분은 ‘계림유사 삼권 송 손목 봉사 고려국 신서장관(鷄林類事 三卷 宋 孫穆 奉使 高麗國 信書狀官)’으로 되어 있고, 기사 부분은 각 판본에 따라 3분단, 4분단 또는 9분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전문은 10여 조항으로 동일하다. 또한, 발췌된 때문이지 조제와 토풍의 내용이 구별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다. 역어 부분도 판본에 따라 어휘 배열 체제가 다르나 대부분 ‘방언’이라고 부제를 쓴 밑에 ‘천왈한날(天曰漢捺)’로부터 시작하여 ‘천왈안저(淺曰眼低)’로 마친다.
참고 자료
최규일, 「동양과 서양의 언어관 비교연구 (1)-공맹ㆍ노장과 플라톤ㆍ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관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제125권, 1999.
방종현, 「하편 : 계림유사 연구」, 동방학지, 1955.
김철헌, 「계림유사 연구」, 국어국문학 제25권, 1926. pp.101~128.
권인한, 「계림유사의 한어음운사적 의의」국어학 제42집, 2003, pp. 3~26
김성규, 「계림유사와 15세기 국어의 성조 비교」, 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