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육상궁(毓祥宮), 연우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
- 최초 등록일
- 2010.09.30
- 최종 저작일
- 2010.09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칠궁-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에 대해 알아보자
칠궁(七宮) -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육상궁(毓祥宮), 연우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
목차
1. 칠궁(七宮)에 대하여
2. 저경궁(儲慶宮)
3. 대빈궁(大嬪宮)
4. 육상궁(毓祥宮)
5. 연우궁(延祐宮)
6. 선희궁(宣禧宮)
7. 경우궁(景祐宮)
8. 덕안궁(德安宮)
본문내용
1. 칠궁(七宮)에 대하여
사적 제 149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칠궁(七宮)은 묘궁(廟宮)으로 조선왕조 5백년간 역대 왕의 생모(生母)로서 왕비에 오르지 못한 일곱 여인들을 봉사(奉祀)한 사당(祠堂)이다. 칠궁은 나중에 붙여진 명칭으로, 원래는 숙빈묘(淑嬪廟)였으며 숙빈묘에서 1744년(영조20) 육상묘(毓祥廟)로, 1753년(영조29) 육상묘에서 육상궁(毓祥宮)으로 바뀌었으며 1908년(융희2)에 육궁(六宮)으로, 1929년 육궁에서 다시 지금의 칠궁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2. 저경궁(儲慶宮)
1) 인빈(仁嬪) 김씨[1555 ∼1613]
인빈 김씨는 수원 김씨 한우(金漢佑)의 딸이고,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이효성(李孝性)의 딸이다.
명종(明宗)의 후궁 경빈(慶嬪) 이씨의 이종사촌(外從)으로 궁중에서 자라났는데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가 보고 기특히 여겨 선조(宣祖)에게 부탁하여 후궁으로 두게 하였다. 1568년 선조의 승은을 받고 소용(昭容: 정3품)에 봉해졌다가 1573년 귀인(貴人: 종1품)이 되었고 후에 빈(嬪: 정1품)으로 승격되었으며, 양화당(養和堂)이라 칭해졌다.
늘 선조의 후궁인 공빈(恭嬪) 김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투었는데, 공빈 김씨가 산욕으로 죽자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또한 공빈 김씨에 대한 질투심으로 공빈의 소생인 광해군(光海君)과 임해군(臨海君)도 미워했는데, 후에 광해군이 세자가 된 뒤에는 오히려 태도를 바꾸어 몇 차례 광해군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그 때문에 광해군은 왕이 된 뒤에 자신의 영광은 서모(庶母)의 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조선 제 16대 임금인 인조(仁祖)가 인빈 김씨의 손자(원종의 아들)이다.
1755년(영조31)에 시호를 경혜(敬惠), 궁호를 저경(儲慶), 무덤을 순강원(順康園: 경기도 남양주시)으로 정하였다.
소생으로는 의안군 성(義安君 珹), 신성군 후(信城君 珝), 정원군 부(定遠君 琈. 원종)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