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장준하와 사상계
- 최초 등록일
- 2010.10.24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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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사 리포트 자료.
장준하와 사상계.
목차
1. 발자취
2. 기고문을 통해서 본 사상계
3. 《사상계》의 시련
본문내용
1. 발자취
1952년 8월 문교부산하 국민사상연구원(원장 백낙준)의 기관지 『思想』발행
1953년 4월 월간 『思想界』창간호 발행
1957년 3월호에 함석헌의 「할 말이 있다」 실림
1957년 5월호에 윤형중 신부의 반박문 「함석헌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 실림
1957년 다시 6월호에 함석헌의 「윤형중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 실림
1957년 이 논쟁을 계기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주목됨
1958년 8월호에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는 글이 필화사건을 일으킴
1958년 이로 인해 발행인 장준하와 필자 함석헌 연행
1958년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면서 `재판 매진`이라는 기현상이 나타남
1959년 판매부수 5만~8만부로 급상승하며 잡지사상 획기적인 기록을 세움
1959년 2월호의 「무엇을 말하랴, 민권(民權)을 짓밟는 횡포(橫暴)를 보고」 라는 제목의 백지권두언으로 자유당 정권 비판
1962년 8월 발행인 장준하,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재단 주최의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부문상` 수상
1963년 정권 탄압으로 서점으로부터의 반품 사태와 세무사찰 시작
1964년 「한․일회담의 제문제」 라는 특집을 통해 군사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맹렬히 공격
1965년 「신을사보호조약의 해부」 라는 제목으로 긴급호 발간
1965년 한․일협정 반대투쟁의 이론적 지도부 역할
1968년 1월 발행인 장준하의 정계진출로 부완혁에게 경영권이 넘어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