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서해석자
- 최초 등록일
- 2010.10.28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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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일제 식민지시대를 통한 교회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세 가지 사건이라면 1907년 대 부흥운동, 1919년 3.1운동, 1937년 신사참배 문제일 것이다.
대 부흥운동은 기독교인의 내적 신앙각성운동이었고, 3.1운동은 민족공동체 의식 속에서 숨위는 교회의 구국 행동이었으며, 신사참배 문제는 다신교의 일제 탄압 하에 수난하는 유일신 신앙고수운동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현실에서 민족의 구원과 교인들의 신앙적 각성과 부흥을 위한 사경회와 부흥회를 이끌고 갔던 지도자 중 감리교 목사로서 한국교회에 신비주의를 보여준 이용도 목사와 1907년 대부흥운동의 기수이고, 3.1 독립운동 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장로교 길선주 목사가 있었다. 본 발제는 이 두 명의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 교회 고유의 성서해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이용도의 성서해석
3. 네비우스 정책과 사경회
4. 길선주의 성서해석
5. 나가는 말
본문내용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을 수 없이 많이 읽으면서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통해말세 신앙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길선주 목사의 성경 해석이 때로는 지나치게 자구적이라는 점이 오히려 요한계시록 같은 묵시문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신비적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막는 제어장치 역할을 종종 하였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나오는 말 : 성경관은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
결론적으로 성경의 축자적 영감은 단순한 교리적-신학적 이슈가 아니라, 목회적 이슈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 초대 교회의 성경관과 문자적 성경 해석을 다루면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교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아니 된다. 역사 안의 한 교회나 한 인물의 성경관이나 성경 해석은 궁극적으로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관 논쟁이 한국 교회를 분열시킨 이유 증 하나는 성경관 논쟁을 지나치게 교리적 논쟁으로만 이해한 때문이다. 성경관은 교리적 싸움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유익과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선전 문구나 억지 주장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입증해야 하는 주장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삶은 불가분리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인 것이다. 불신자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자신의 삶은 물론 한국 교회와 초대 교인들의 삶 가운데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실천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따라서 일제 치하의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서 교회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발견한 것이다. 목숨을 위협받는 일제의 암흑기 속에서 그 당시 목회자들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 라는 처절한 씨름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축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삶의 문제와 싸워나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