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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국사에 관해 쓴글로 창건설화와 불국사에 담긴 의미를 중점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인터넷에 전혀 없는 글입니다.
세미논문급으로 칭찬 많이 받았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불국사의 창건
Ⅲ. 불국을 향한 신라인들의 염원
1. 석가정토 영역
2. 아미타정토 영역
3. 비로전 영역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불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신라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8세기 중엽, 신라인들은 그들의 땅에 부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교 사상을 총동원하여 그들이 꿈꿔 오던 이상적인 부처님 나라, 즉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불국사이다.
불국사의 창건에 관하여 전하고 있는 자료는 『삼국유사(三國遺事)권5, 효선 대성효이세부모 조(孝善 大城孝二世父母 條)』가 있다. 그리고 필사본으로 전하는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과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가 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는 528년(신라 법흥왕 15)에 법흥왕 어머니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게 되어 그 이후로 절을 크게 중건하다,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해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의 기록은 글씨도 일정하지 않고 크기도 달라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추측되므로 여기에 나열된 건물들이 당시 한꺼번에 창건되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같이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 역시 찬자 일연에 대한 연대 착오부터 불국사의 창건을 신라 불교의 시초에서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내용 등 사료로 신뢰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그래서 불국사 창건 사실을 살피는데 기본이 되는 중요한 자료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의 대성효이세부모 조(孝善 大城孝二世父母 條)가 된다. 그러나 이도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사중(寺中)의 기록`에 의하면 김대성이 751년(경덕왕 10)에 불국사의 건설 공사를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에 대성이 죽자 국가가 이를 완성했다고 되어 있어, 혜공왕 10년 이후에 국가에 의해서 불국사가 완공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神文代)`라는 제호(題號)를 붙이고 있어서, 김대성이 신문왕 대에 이세의 부모를 위해서 두 사찰을 건립했다고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참고 자료
- 일 연,『三國遺事』
- 김상현, 1992,『불국사』, 대원사
- 김종명, 2008,『한국의 세계불교유산 : 사상과 의의』, 집문당
- 최준식 외 9명, 2002,『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 시공사
- 한국불교연구원, 1974,『佛國寺』,일지사
- 황수영, 2000,『불국사와 석굴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허 균, 2000,『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
- 김남윤, 1997, 「불국사의 창건과 그 위상」, 『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 논문집』(제18집), 신라문화선양회
- KBS 역사스페셜, 「불국사 그 이름에 담긴 비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