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최현배
- 최초 등록일
- 2010.10.29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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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솔 최현배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다수의 문헌을 참고하여 정확하고 잘 정리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서론 : 외솔 최현배의 삶
2. 본론
(1) 외솔의 교육사상
(2) 저술책 「베스달로찌이의 교육사상」
(3) 외솔의 애국사상
(4) 저술책 「나라사랑의 길」
본문내용
외솔 최현배 선생은 개화기와 일제 시대를 거쳐서 해방, 6․25전쟁, 군사혁명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말과 글의 발전을 위해서 연구하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공헌한 한글학자이고, 사상가이며 교육자였던 인물이다. 이 글에서 외솔의 교육 사상과 신념을 서술하기 전에 인물의 생애를 먼저 다루려고 한다.
외솔 최현배는 1894년 음력 10월 19일(호적등본상)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노동동 163번지 8통 9호에서 아버지 최병수와 어머니 월성 박씨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외솔은 경주 최씨 현실파의 울산지파에 속하는데 신라 최치원의 후손인 고려 때의 사람 최선지의 24대손이다. 외솔은 종교는 기독교의 장로교파로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01년, 그의 나이 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동네 어른들로부터 총명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1908년 11월 1일, 외솔이 공부를 하던 동네 서당의 폐쇄로 인해 울산에 있는 일신 학교에 입학하여 신식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를 다닐 때, 처음 배우는 산수에 흥미를 느꼈으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솔은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서 산수 문제를 풀게 되었으나 그 문제만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외솔은 선생님께 ‘뒷날 공부를 더하여 반드시 이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이 산수 문제를 풀어 보이겠습니다.’ 고 약속을 했다. 외솔은 이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교육계에 몸을 바쳤다.
1910년 4월 12일에 그는 관립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한 달 뒤 상동 예배당에서 열린 조선어 강습원에 나갔는데 이것이 외솔로 하여금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배움을 받고 ‘한글’ 에 전념하게 된 계기였다. 또, 이 무렵 외솔은 신채호의 「충무공전」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이 되자 외솔은 스스로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라 자처하며 머리를 빡빡 깎았으며, 해방이 될 때까지 기르지 않았다. 1915년 4월 12일에는 관비 유학생으로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국어과(일본어과) 및 한문과에 입학하였다.
참고 자료
고영근(1995).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 서울: 집문당.
박영신(2002). 외솔과 한결의 사상,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장원동(2007). 외솔 최현배의 교육사상, 서울: 상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