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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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빌론의 탑은 성토(聲討)로 무너졌지만, 소록도는 침묵으로 무너졌다. 천국으로 입적하기를 희망했던 비참한 대지의 어린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잘난 침묵을 고수하며 천국과 지옥 사이의 허공 속에서 스스로의 몸을 화장(火葬)하고 그 뼈를 비참한 대지에서 가장 먼 바다에 뿌렸다. 그것으로 비참한 대지의 어린 사람들은 천국으로 입적하지 못한 설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뼈를 뿌리는 그 순간이 비참한 대지 쪽으로의 바닷물이 밀려들어가는 만조(滿潮) 때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긴 그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 어디 그뿐이었으랴. 그들은 그들이 천국으로 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침묵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조차 몰랐으니.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시종일관 답답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천국 같은 구석을 찾아 볼 수 없고, 병자촌(病者村) 특유의 비관의식과 투병생활에 지친 삶이 기분 나쁠 정도로 눅진하게 소설 전체에 배어 있다. 사랑과 믿음과 화합이라는 천국을 묘사할 듯한 아름다운 단어는 이를 실천할 주체들 사이의 소통 부재로 인해 바닷바람 속에 한 톨의 소금 먼지가 되어 흩어질 뿐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론으로 제시된 여러 가지 구체적 안(案)들은 바빌론의 탑이 되어 무너졌다.
이런 답답함은 바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올바른 소통’의 부재로 나라가 통째로 천국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으로 빠져 버린 것을 이른다. 나라가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사회를 썩어버린 몸뚱이를 지닌 문둥이로 형상화하여 통탄한 것이 바로 <당신들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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