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구원

소개글

고리 대금.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7세기 동안 서양에서 경제와 종교, 돈과 구원의 문제가 뒤얽혀 그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한 현상이 또 있었을까? 그것은 장기(長技)의 중세, 즉 낡은 상징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억누르고, 근대성은 신성 불가침한 금기들 사이로 힘겹게 진전했던 시대, 또 역사의 간계(奸計)로 말미암아 종교 권력이 휘두른 탄압 속에서 세속적 성공의 수단들이 발견되었던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고리 대금은 13세기의 주요 현안들 가운데 하나였다. 서기 1000년 이후 눈부시게 성장해 온 기독교는 그 무렵 절정기에 도달하여 영광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 입지는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화폐 경제가 급성장하고 널리 퍼져 나가면서 기독교적인 기존의 가치들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경제 체제가 탄생하려 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가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들, 적어도 교회가 예전부터 비난해 오던 행위들이 대거 필요했다. 금전적 가치들과 심성이 충돌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하고 일상적인, 그리고 거듭되는 금기로 얼룩진 투쟁의 쟁점은 불법적인 고리(高利)와는 마땅히 구분되어야 할 합법적 이윤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고리 대금은 죄악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했을까? 돈궤화 떨어지기 싫어했던 아르파공처럼 고리 대금업자가 가득 채워 애지중지하며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한 이 돈주머니에 도대체 어떤 저주가 내려 고리 대금업자가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 돈주머니를 손에서 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돈주머니와 영생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스스로 또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찾아낼 것인가? 자, 이제 부와 천국, 돈과 지옥 사이에서 고리 대금업자가 벌인 치열한 투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목차

◉ 돈과 지옥 사이에서 : 고리 대금과 고리 대금업자
◉ 돈 : 고리 대금
◉ 시간을 훔치는 자
◉ 고리 대금업자와 죽음
◉ 돈과 구원 : 연옥
◉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

본문내용

◉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
구원으로 가는 길에서 이제 리에주의 고리 대금업자의 부인을 따라가 보자. 그녀 또한 극단적인 모델이다. 용감하게 부부로서 요구를 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고리 대금업자인 남편을 대신하여 속죄했건만, 그녀가 감사와 격려의 표시로 받은 것은 유령의 고맙다는 인사와 연옥 체제의 계산법을 꽤나 거칠게 구현한 신비로운 영상뿐이었다. 유령의 몸은 흑백으로 연옥의 시간을 표시하는 바로미터이다. 다른 텍스트들에서는 반쯤 정화된 죽은 자가 하반신은 검고 상반신만 희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반은 희고 반은 검은 모습은 하프타임을 나타낸다. 고리 대금업자의 아내들의 태도가 마냥 감탄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녀들 가운데서는 ‘악한 여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밝혀두자. 자크 드 비트리는 고리 대금업자 때문에 무일푼이 된 기사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는데, 이 기사는 고리 대금업자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과부가 된 그의 아내와 결혼한 덕택에 고리 대금업자의 전 재산을 다 차지했다고 한다. 고리 대금업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할 수 있는 속죄의 전통적인 체제에는 고해, 통회(참회), 그리고 보속(속죄)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경우에 속죄는 반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죄와 속죄의 개념은 점점 더 통회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죽음이 재촉해서건 혹은 악마에 의해 말하는 능력, 즉 고해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해서건, 미처 반환을 하지 못한 고리 대금업자는 진실한 통회를 함으로써 구원받는 데 성공하곤 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통회를 했는지 안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 하느님은 아시기 마련이었고, 간혹 어떤 표시를 통하여 지상에 진실을 알리곤 하셨다. 보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통회하는 것만으로도 연옥에 가게 될 것이고, 연옥에서는 어쨌든 가혹한 시련을 거치게 되어 있었던 바, 왜 고리 대금업자가 통회한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인가? 연옥은 정말이지 기독교가 13세기에 고리 대금업자에게 보낸 눈짓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