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한점령정책
- 최초 등록일
- 2010.11.25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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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 이후의 미국의 남한점령정책에 관해서 다룬 레포트입니다.
교수님께 A+를 받을정도로 정말 열심히 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배경
-미군 상륙과 남한 정국
(2) 점령의 과정
-미국의 대한정책
1) 전시 미국의 대한정책 실시
2) 신탁통치안과 분할점령안의 성격
(3) 점령정책 및 영향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
1) 토지정책과 식량 공출제
2) 귀속사업체 처리와 노동정책
(4) 결과
=미국의 남한점령정책-결과
본문내용
미군 상륙과 남한 정국
미국의 점령정책은 대국의 소국에 대한 정책의 구체상을 검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련과의 ‘협조’를 통해서 한반도의 38선 이남지역을 세력권으로 확보한 미국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이 해방되고 23일이나 지난 1945년 9월 8일이었다. 이른바 일본제국주의의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미 제24군단이 서울의 외항인 인천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남한 점령을 개시한 것이다. 미국이 남한에 주둔하기 이전의 23일동안 한반도는 한민족의 자주적인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남한에서의 점령 정책의 개시는 이러한 한민족의 자주적인 노력과의 직접적인 대결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군의 진주 과정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통해 이미 정권수립을 위한 정치활동에 돌입한 한민족은 미국의 진주를 앞두고 급히 조선인민공화국(이하 인공으로 줄임)이라는 정권기관을 세웠다. 한민족은 대국의 군사점령에 앞서 졸속이기는 하나 스스로 정권을 수립하고 그것을 통해 점령군과 대응해 가겠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은 마중 나온 일본군사령관의 안내와 일본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에 진주했고, 미군의 진주를 환영하는 한국인 2명이 일본헌병의 발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한국인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미군은 남한에 진주하자마자 한국인의 주체적인 정치행위를 부정하고 점령군으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미국은 서울을 점령하고 나자 조선총독부의 기구와 간부들을 온존ㆍ잔존시키고, 조선총독부를 이용해서 행정임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등 한국인 전체에 대하여 비우호적이며 나아가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갈등이 명시적으로 표출된 것은 진주하고 나서 1개월 후인 10월 10일에 발표된 아놀드 미국정장관의 「인공부인성명」이었다.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에는 오직 하나의 정부가 존재한다. 이 정부는 맥아더 원수의 포고와 하지 중장의 정령과 군정장관의 행정령에 의해 수립되었다. … 스스로 정한 ‘관리’, ‘경찰’, ‘국민전체를 대표하는’ 큰(또는 작은) 대회, ‘(자칭) 한국인민정부’는 권위도 권력도 실체도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괴뢰극의 이면에 연극을 조종하는 사기범이 있어 어리석게도 한국정부의 정당한 행정사무의 일부분이라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직면해 있는 현실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