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쑤성의 성도 란저우시
- 최초 등록일
- 2010.11.30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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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쑤성의 성도 란저우시에 관한 인구,기후,인프라,관광지등을 조사
목차
역사
지리
행정구역
기후
본문내용
서북(西北)의 노도(路道)’라고 일컬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로, 시란[西蘭]·간신[甘新]·간닝[甘寧]·간칭[甘靑] 등의 여러 도로가 모이고, 란신[蘭新]·시란·룽하이[?海]·바오란[包蘭]철도의 결절점이다. 주민은 한족(漢族) 외에 소수의 후이족[回族]·티베트족·몽골족 등이 어울려 산다.
역사
원래는 서역의 강족(羌族)의 땅이었는데,
기원전 6세기경 진나라 땅의 일부가 되었다.
기원전 81년 한나라 통치기(206BC~220AD)에는 서안의 한 현인 진성현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한때는 황금도시라도고 불렸는데,
기원전 1세기 때부터는 천산북로를 잇는 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이자, 중요한 황하가 흐르는 통로였다. 란저우를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이 옥문관까지 확대되었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 란저우는 부족 국가들의 수도가 되었다.
다른 문화 유산들이 혼합되어 현재의 간쑤 성 지역은 5세기부터 11세기까지 불교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4세기에는 잠시 독립국인 전량의 수도였다. 북위 때 진성군이 재설치되었다.
수나라 때 난주총관부의 소재지가 되었고
당나라 때에도 이 이름을 유지했다.
763년에 티베트족이 점령되었고
843년에 당나라가 회복하였다. 서하의 손에 들어간 후
1041년에 송나라가 탈환하였다. 난주는 재설치되었다.
1127년 이후 금나라의 손에 들어갔고
1235년 이후에는 몽골족이 차지하였다.
명나라 때 부는 현으로 강등되었고 임조수부의 관할이 되었으나
1477년에 정치적인 단위로써 재설치되었다.
1739년에 임조의 수부가 난주로 이동함에 따라 난주수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난주는 1864~1875년의 감숙 후이족 반란 때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도시는 청나라 때인 1656년에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1666년에 감숙이 독립된 성이 되었고 난주는 성도가 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중국 북서부의 소비에트 영향의 중심지가 되었다.
참고 자료
http://www.gansu.gov.cn
http://www.lz.gansu.gov.cn/
http://ko.wikipedia.org
http://www.naver.com
http://www.google.co.kr
http://kr.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