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 최초 등록일
- 2010.12.03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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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목차
해방전 / 해방후
출생
어린시절
활동 초기
파리장서사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참여
제1 , 2차 유림단 사건
1926년 12월 나석주 의거
중경에서 피체
해방 후
단독임시정부 반대운동
단독정부 수립이후
국제구락부 사건
성균관 총장
효창공원 의사묘소 이장사건
본문내용
해방전 / 해방후
해방전에는
- 나석주 의거(동), 파리장서 사건(3.1운동 33인x),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라는 상소, 1909년에는 사립학교인 성명학교(星明學校) 설립에 참여, 일진회가 한일합병론을 주장 하자 동지를 규합하여 이를 규탄하는 글을 중추원에 발송
해방후에는
단독임정 반대운동 신탁통치 반대운동 좌우합작운동, 독재 예언 1951년 한국 전쟁 이후 대통령 이승만에게 하야경고문, 국제구락부 사건, 성균관대 재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대표로 추대되었고,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초대회장,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에 선출 (동)
출생
경상북도 성주 대가면 사월리의 영남 유학자 집안 출신이며, 선조 때의 정승 김우옹(金宇顒)의 12대손 칠봉(七峰) 김호림(金頀林)과 인동장씨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
- 심산(心山)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맹자의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이란 구절에 마음이 닿아 스스로 지음.
- 벽옹(躄翁) :후일 일제의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뒤별호로 사용.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