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이상화
- 최초 등록일
- 2010.12.08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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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저항시인 이상화 관련 내용입니다.
목차
1. 이상화의 방랑과 문단 활동
2. 1920년대의 시
3. 1920년대 관능과 퇴폐적 낭만주의에서 승화된 민족적 저항시인
(1)낭만파(浪漫派)의 시(1920∼1925)
(2)신경향파(新傾向派)의 시
본문내용
이상화의 방랑과 문단 활동
호 상화(尙火). 본관 경주. 대구(大邱) 출생으로, 상화는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주로 백부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 이일우는 3천석 지기의 부호로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개화한 인물이었는데 자손들을 보통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숙을 통해서 교육시켰다고 한다. 상화도 독선생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15할 때 백부를 졸라 서울에 유학을 갔고 경성 중앙학교를 다녔다.
정진규의 <이상화 평전>에 의하면, 상화는 3학년에 접어들면서 “인생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인 번민”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의 갈등과 방황은 병적으로 깊어져서 나중엔 귀향, 가출, 수 개월간 풍찬노숙의 전국 유랑으로 이어졌다. 나라를 잃은 젊은이가 지날 수 있는 고뇌에다가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겹쳐져 젊은 영혼은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열병을 앓은 것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거쳤던 이 ‘고뇌의 시간’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 시기를 통해 ‘시인으로서의 상화’가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17세 때 아우 상백과 동향인인 백기만과 함께 습작집 <거화>를 발간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시혼은 그 지독한 열병의 산고를 거쳐 본격적으로 개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랑 생활을 끝낸 뒤 1919년에 대구 학생 운동을 공모하다가 검거를 피해 서울로 피신하기도 했던 그는 그 해에 서온순과 결혼하는 등 일신 상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들어갔다. 1921년 동향인 빙허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 홍사용, 나도향, 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의 동인에 합류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