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의 놀이문화
- 최초 등록일
- 2002.06.17
- 최종 저작일
-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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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반문화중 아무거나 택일 해서 선택해서 작성한것 입니다. 흔히들 조사하는 양반의 '의식주'문화에 비해 참신하답니다.^^
목차
1. '양반'에 관해...
2. 양반들이 즐기던 놀이
1) 종경도 놀이
2) 화전놀이
3) 선유줄불놀이
3. 놀이의 의의
본문내용
‘놀이’란 단순히 ‘논다..’는 의미가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가장 총체적이고 집약적인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양반들의 문화중 의.식.주 문화중 택일 하려고 했지만,양반들의 의.식.주문화에서는 이미 많은 책과 자료들은 쉽게 접할 수 있고, 교과서에서도 다룬 바가 있어 식상했다. 뭔가 양반들의 다른 면을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었다.과연 양반들의 모습은 항상 반듯하고, 정좌하여 글읽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전부일까? 아니면, 밥그릇싸움인 당쟁이나,이권다툼의 모습이 전부일까....
놀이란 그 시대의 배경이나, 놀이의 주체자 ,사회 경제의 모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왜 양반들의 놀이등은 찾기 어려운 것일까? 유교사회는 인간에게 외향적인 것보다는 근엄한태도를 요구한 것이 분명하다. 많은 축제들이 2000여 년 전부터 계승되어 오다가 조선조에 한때 제지 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축제라는것,놀이라는 것은 신체를 움직이고,음주가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유교윤리에서 보면 견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양반들 스스로도 지적수준이 낮다는 관점에서 견제 했었기 때문에 더욱 자료가 없지 않았나 추측된다.당시 지배계층 이었던 ‘양반’이란 개념은 무엇이며,놀이의 주체가 대부분 서민이었던 것에 비해 양반들이 즐겼던 놀이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조사 해 봤다.
1)‘양반’에 관해...
국왕이 조회(朝會)할 때 남향한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文班)은 동쪽에, 무반(武班)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고 하였다. 문반과 무반이 처음으로 구별된 것은 976년(경종 1)에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였다. 이때의 구분은 토지를 지급하기 위하여 정해진 구분으로 다분히 편의적인 것이었다.
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에 대한 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반 위주로 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만화한국의 역사 조선의개창과 양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