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김씨와 이문구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10.12.16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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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문구의 생애와 우리동네 시리즈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정말 열심히 만든 것으로 질 보장합니다.
목차
1. 작가 이문구(1941~2002)
2. 이문구의 문학관
3. 연작소설 『우리동네』의 특징
4. 해학소설
5. 「우리동네 김씨」
1) 「우리동네 김씨」의 줄거리
2) 「우리동네 김씨」의 해학적 희화화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작가 이문구 (1941~2002) 사이버 문장(http://www.munjang.or.kr/) - 문학박사 구자황의 글
이문구는 1941년 충남 보령군 대천읍 대천리(현재의 보령시 대관동) 관촌 부락에서 사법대서사 겸 선주(船主)의 4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관촌 부락에서의 꿈같던 그의 유년기는 6‧25 전쟁과 함께 참담하게 끝난다. 좌익 활동에 연루되었던 부친과 두 형님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그의 정신적 지주(支柱)이며 ‘전형적 이조인(李朝人)’이시던 할아버지도 그 여파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1959년 봄, 중학교만 근근이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그는 집과 전답을 처분하고 상경하였다.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자, 그는 진학을 꿈꾸고, 어느 시골 고등학교의 졸업장을 사들여 입학 요건을 갖춘 다음, 이광수와 같은 소설가를 꿈꾸며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응시하여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여기서 이문구는 평생의 은사로 모시게 되는 김동리(金東里) 선생을 만나게 된다.
1963년, 졸업을 앞두고 해인사(海印寺)에 있는 한 암자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열세 편의 습작품을 쓰며 문학수업에 몰두했던 이문구는 이 해 〈현대문학〉 9월호에 단편 「다갈라불망비」로 김동리의 초회 추천을 받는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그는 생계를 위해 당시 그는 도로 포장공사장이며 심지어 공동묘지 이장 공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데, 이때의 밑바닥 체험은 나중에 이문구 문학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1970년 김동리 선생의 주선으로 〈월간문학〉의 편집장이 된 이문구는 이후 장편 『장한몽』과 단편 「암소」, 중편 「해벽」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이문구가 7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그의 출세작 『관촌수필』과 『우리동네』 연작을 통해서이다. 1972년 이문구는 떠나온 고향의 이야기인 「일락서산」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관촌수필』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 되었고, 5년 후 1977년 여덟 번째 작품인 「월곡후야」를 끝으로 이 연작은 대미를 장식한다. 여기서 작가는 고향 ‘관촌(冠村)’의 더 할 수 없는 인정의 세계가 전쟁의 폭력과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해체되어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촌수필』에 이어, 이문구는 70년대 우리 농촌의 현실을 놀라운 밀도로 재현하면서 근대화의 음지에 가려져 있던 농촌과 농촌문제를 소설적으로 제기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동네』 연작이다. 이로써 이문구는 70년대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사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참고 자료
- 이문구 저,「우리동네 김씨」, 랜덤하우스 중앙
- 나병철 저,「소설의 이해」, 문예출판사
- 구자황 저, 이문구 문학의 전통과 근대(2006), 도서출판 역락
- 구자황 , 사이버 문장 (http://www.munjang.or.kr/)
- 이만교 저, 이문구 소설 연구(2004) , 인하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