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회 경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0.12.20
- 최종 저작일
- 2010.12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고려 내부에서는 원 간섭기가 끝날 무렵부터 급부상한 무신계급들이 개혁적인 정국운영보다는 파행적인 족당정치를 행함으로 고려사회에 깊숙이 폐단의 뿌리를 심었고, 이러한 집권자들은 관리 체계를 어지럽히고, 무차비한 토지탈점과 뇌물 수수 등의 권력을 앞세운 횡포를 부림으로서 국가 재정의 파탄을 가져왔으며, 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들과 함께 고려 밖에서는 원 간섭기가 끝나갈 무렵 원(元)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쇠망해가고, 대신 명(明)에 의해서 동아시아의 대륙의 패권이 다시금 자리 잡아 가는 시기에 놓이게 되었다. 또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입은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며 국가 재정이 고갈에 이르러 고려왕조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Ⅲ. 수취제도의 변화
Ⅳ. 농업기술의 발전
Ⅴ. 맺음말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1.머리말
고려 내부에서는 원 간섭기가 끝날 무렵부터 급부상한 무신계급들이 개혁적인 정국운영보다는 파행적인 족당정치를 행함으로 고려사회에 깊숙이 폐단의 뿌리를 심었고, 이러한 집권자들은 관리 체계를 어지럽히고, 무차비한 토지탈점과 뇌물 수수 등의 권력을 앞세운 횡포를 부림으로서 국가 재정의 파탄을 가져왔으며, 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들과 함께 고려 밖에서는 원 간섭기가 끝나갈 무렵 원(元)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쇠망해가고, 대신 명(明)에 의해서 동아시아의 대륙의 패권이 다시금 자리 잡아 가는 시기에 놓이게 되었다. 또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입은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며 국가 재정이 고갈에 이르러 고려왕조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이러한 고려의 대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고려는 회생이 불가능한 정도에 놓이게 되었고, 이러한 고려왕조의 현실은 집정자들의 폐단이 심해질수록 심각하게 번져갔다. 고려후기부터 심각하게 진행 되오 던 농장의 확대로 인한 국가적인 폐단을 막기 위해 실시한 전민병정사업의 전개, 고려 말에 이르러서 전면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이루어 낸 토지제도인 과전법의 시행 및 수취제도의 변화 . 농업기술의 발전 . 상업과 수공업 등 고려후기의 경제는 다양한 변화를 가진다. 우리는 이를 통해 농민들의 생활과 국가경제에 어떤 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2.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1) 전시과체제의 붕괴
고려전기의 사회체제를 경제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전시과제도. 전시과체제에서는 모든 지배층은 국가에 대한 복무의 대가로 수조지를 분급 받았고, 모든 지배기구 역시 수조지를 배정받아 재원을 확보하였다. 백성들은 자기의 소유지인 민전의 자가경영을 통해 생활의 토대를 마련하고 부세를 납부하여 녹봉과 국용 및 군수 등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9』,1996
홍승기,『고려사회경제사』,2001
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1997
박용운, 이정신, 이진환 외 공저,『고려시대 사람들이야기』2,신서원,2002.
김종수 외 ,『한국사강의 』, 한울아카데미,1989
14세기 고려사회 성격 연구반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