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그들의나라
- 최초 등록일
- 2010.12.26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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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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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최고의 당쟁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된’, 이런 수식어가 붙는 송시열의 첫 학문적 스승은 아버지라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더 엄밀히 말해서 송시열의 아버지 송갑조가 아들의 첫 학문교재로 삼은 것은 육곡 이이의 『격몽요결』이므로 그의 첫 스승은 이이라고 말한다. 송시열 집안의 학문적, 정치적 종주가 서인의 계열이고, 당시 정계에는 율곡 이이를 종주로 하는 서인 세력과 퇴계 이황을 종주로 하는 남인 세력이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어린 나이에 『격몽요결』을 읽고 감탄을 하여 성인이 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학문에 정진했다고 한다. 짧은 소견으로 볼 때 송시열은 당쟁에 뛰어들기 보다는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후학들을 기르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면, 아마 극단적인 평가는 듣지 않고, 정말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송시열의 기본적 사상은 그의 아버지와 사림파의 사관이었고, 그런 편중된 학문이 그가 정치함에 있어서 외골수적인 생각을 갖게 한 것 같다. 즉, 유연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한 가지 것만을 주장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율곡 이이의 학통의 진수가 아니었다. 송시열, 김집 등이 널리 알린 ‘예학’은 신분에 맞는 예절을 지키라는 주장으로 이이의 개혁사상이 아니라 수구 사상이었고, ‘예학’에 의하면 사대부는 영원한 지배계급, 농민은 영원한 피지배계급인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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