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와 국제유가 전망
- 최초 등록일
- 2011.03.21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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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민주화 시위(자스민 혁명)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옮겨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고 국제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과거 국제유가의 흐름을 살펴보고 향후 시나리오별 국제유가 전망과 함께 3차 오일쇼크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목차
1. 과거의 사례
(1) 1차 오일쇼크 (1973~1974)
(2) 2차 오일쇼크 (1978~1980)
(3) 걸프전 (1990. 8. 2~1991. 2. 28)
(4) 이라크전 (2003. 3. 20~2003. 5. 1)
(5) ‘04~’08년 유가급등기
2. MENA사태
(1) 개요
(2) 1, 2차 오일쇼크와의 비교
3. 향후 전망
(1) 조기 종결의 경우
(2) 제한적 확산의 경우
(3) 3차 오일쇼크 가능성
4. 결론
본문내용
(1) 1차 오일쇼크 (1973~1974)
1973년 10월 이집트와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이슬람 국가들은 이에 반발하여 석유자원을 무기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OPEC은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매월 5%씩 원유 생산을 줄이기로 결의했고, 사우디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원조를 중단하지 않으면 원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에는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산유국의 자원소유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중동 지역에 퍼진 자원 민족주의가 사태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엑슨,모빌,걸프 등 서구의 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원유의 공시가격을 결정했고, 산유국에는 저렴한 권리금만을 지급해왔다. 자원 민족주의의 확산으로 산유국들은 점차 메이저 석유회사들에 대한 지분참여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소유하게 된 지분만큼 원유를 직접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하자 유가는 상승압력을 받게 되었다. 원유시장에서 파워를 키운 산유국들은 미국, 네덜란드 등에 금수조치를 내리고 감산을 결의하는 등 공급상의 차질을 일으켰고, 4차 중동전쟁은 이러한 유가급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산업구조가 미성숙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가로 인해 성장률 둔화, 물가 급등, 무역수지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은 1차 오일쇼크 이전부터 재할인율과 단기 이자율을 단계적으로 인상시키며 긴축기조를 유지해오고 있었으나, 유가 충격이 오자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최초에는 오히려 단기 이자율을 낮추는 확장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유가가 지속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자 1974년 기준금리를 13%까지 올리면서 통화긴축을 단행하였다. 반면, 1차 오일쇼크 이전부터 긴축정책을 수행해 오던 독일과 일본은 오일쇼크 발생 뒤에도 일관되게 긴축기조를 유지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