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화랑도의 연원과 윤리정신
- 최초 등록일
- 2011.03.26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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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 나라의 고유사상 중에 하나인 신라 화랑도의 연원과 윤리정신을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한 글.
목차
신라 화랑도의 연원과 윤리정신
1. 화랑도의 연원
2. 화랑도의 윤리
3. 화랑도의 사상적 특징
본문내용
1. 화랑도의 연원
화랑도는 풍월도 혹은 풍류도라고도 한다. 화랑도는 신라 진흥왕 때 비로소 제도로 정착되면서 그 정신을 진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원은 이보다 앞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남선에 따르면 풍월이나 풍류는 ‘부루’라는 말을 한자음으로 옮긴 것이며, 부루의 도란 곧 신도(神道)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때 신도는 고조선의 종교사상으로 고대 종교의 신도 사상인 풍류도 혹은 풍월도가 화랑의 정신 또는 이념인 화랑도로 전승되어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최치원이 쓴「난랑비서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이 가르침이 만들어진 근원은《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이는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는 것으로 뭇 생명을 교화한다. 즉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라에 나가면 충성하라는 것은 노(魯)나라 공자의 뜻이요, 무위자연에 처하라는 것과 말없이 실천함에 대한 가르침은 주(周)나라 노자의 가르침이요, 모든 악행은 하지 말며 모든 선행을 다하라는 것은 인도의 석가모니이 가르침이다.”
이처럼 화랑도는 유(儒)불(佛)도(道) 삼교를 포함하는 고대 한국의 독특한 사상체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선사》라는 책이 남아 있지 않아 풍류도의 근원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다만 고구려에도 조의선인(衣仙人) 등의 관직이 있었고 경당(堂)을 통해 청소년을 교육한 사실이 있음을 볼 때, 화랑도와 같은 유형의 사상이 신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그보다 오랜 근원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삼국사기》의「사다함전」에 보면 “사람들이 청하여 화랑으로 받드므로 부득이 그것을 맡았다. 그 무리가 무려 1,000명이나 되었으나 모구 사다함을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진흥왕 27년(566)의 일인데 한 화랑을 따른 화도(花徒)가 무려 1,000여 명이나 된 것을 보면 그 무리가 무도 귀족이라고 볼 수는 없고 보통 사람들의 자제가 포함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전해진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2. 유동식 지음,《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연세대출판부, 1989.
3. 조현규 저, 《한국의 윤리사상》, 중문, 2001.
4. 김승동 저, 《한국철학사상》, 제일문화사,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