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학의 성립 -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 최초 등록일
- 2011.03.29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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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역사학의 성립(사마천,반고)
목차
1. 사마천(司馬遷)의 사학(史學) - 『사기(史記)』
2. 반고(班固)의 사학(史學) - 『한서(漢書)』
3. 마·반(馬班) 두 가문의 사학 비교
4. 관찬 기전체 단대사 『동관한기(東觀漢記)』
본문내용
중국역사학의 성립 -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1. 사마천(司馬遷)의 사학(史學) - 『사기(史記)』
사마천은 중국 고대의 진보적 사학가 중에서도 걸출한 대표 격으로 그의 『사기』는 3,000년 동안을 관통하는 통사였으며, 이로써 기전체의 사서체제를 확립했고 고금을 관통하는 통사의 저작을 개시한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인민성과 사상성은 후대의 진보적 사학가에 자양분을 공급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기』의 출현은 중국 학술 사상 획기적 대사건으로써 고대 사학의 확립과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B.C 110년 사마담의 유언으로 『사기』 집필을 결심하여 B.C 108년에 관직에 나아가 태사령이 되어 많은 자료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집필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릉의 화로 인해 궁형에 처해져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 일은 사마천에게 더욱 ‘발분저서(發憤著書)’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릉 사건 때 자신이 겪었던 일과 사상적으로 통분하였던 일을 그의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報任安書』)를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B.C 95년 중서령이 되어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는데 걸린 시간은 15년에서 20년으로 얼마나 큰 노력과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사기』의 원명은 『태사공서』였다. 『사기』는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으로 모두 130권, 52만 6,500자로 중국 최초의 기전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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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