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숨쉬는 비잔티움제국의 문화유산
- 최초 등록일
- 2011.06.07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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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잔티움 문화와 예술과목 중간 레포트
목차
I. 서론
- 비잔티움제국의 유산을 간직한 도시들
- 문화 융합의 중심지 이스탄불
II. 본론
- 이스탄불에 숨쉬는 비잔티움제국의 문화유산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 비잔티움 제국의 유산을 간직한 도시들
비잔티움제국 :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사망 이후 동・서로 분열된
중세 로마제국 중 동로마 제국(330-1453)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331년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의해 로마의 동부지역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었다. 비잔티움 문화는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메메드2세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1000년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비잔티움제국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화의 조화로운 융합을 기초로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도의 연장선에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건설 초기에는 동로마 제국이라고 인식할 만큼 로마 문화의 기반위에 간소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리스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서서히 자신들만의 새로운 제국을 확고히 해나갔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지중해안의 여러 섬들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대표적인 융합문화의 꽃을 피웠다.
비잔티움 문화는 앞서 말했듯이 이질적인 문화의 조화로운 융합으로 창조된 대표적인 신문화이다. 다양한 문화의 융합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제국은 지리적으로 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비잔티움제국은 로마제국의 고전적인 문화와 카톨릭,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질적 다문화의 교차점이었다. 유목민족, 슬라브족, 페르시아 왕조, 아랍민족, 투르크족 등 수많은 문화의 집합장소로 자리하며 사회・문화적인 보편화를 이루었다. 제국의 건설과 번영의 과정에서 위와 같은 다양한 문화를 복합적으로 받아들인 만큼 비잔티움제국의 찬란했던 문화적 소산들은 다양한 지역에 아직도 그 빛을 발하며 남아있다.
비잔티움제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많은 지역들 중, 가장 그 역사를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곳은 비잔티움제국의 시작을 알린 도시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일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스탄불에는 비잔티움이 숨쉬고 있다. 지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문화 융합의 중심지 이스탄불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비잔티움제국은 그 찬란한 유산들을 뒤로한 채 멸망했다. 비잔티움 제국이 시작된 도시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지명이 바뀌며 오스만제국의 수도로서 새로운 문화로의 도약을 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이희철, "이스탄불(세계사의 축소, 인류 문명의 박물관)", 리수, 2005
이희수, "이스탄불(동서양 문명의 교류)", 살림, 2004
천순천, "인류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기행", 성성혜(역), 예담, 2002
Ernst Hans Josef Gombrich, “서양미술사”, 백승길(역), 예경, 2003
박용우, “콘스탄티노플과 비잔틴 교회 이야기”, 한국장로교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