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장군과 살수대첩
- 최초 등록일
- 2011.06.15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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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과 살수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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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장군과 살수대첩.
평원왕 31년에 수나라는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고구려 장군들은 수나라의 사태를 항상 살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평원왕이 죽고 맏아들인 영양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양왕은 어릴 때부터 국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외적의 침입에 항상 대비하라!" 왕위에 오른 영양왕은 더욱 국방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영양왕 9년 고구려는 말갈의 군사 1만여 명으로 영주를 공격했습니다. 평원왕 때 계획하고도 이루지 못한 선제 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수나라 문제는 즉시 한왕 양과 왕세적을 원수로 삼아서 30만 대군으로 고구려의 공격군을 토벌하도록 하였습니다. 한왕 양의 군사가 임유관에 이르렀을 때, 장마철 이여서 보급로가 끊어져 군량이 떨어지고 유행병이 돌았습니다. 한편, 주라후로 하여금 바닷길로 평양을 공격하도록 하였으나 폭풍으로 배가 많이 침몰 당했습니다. 그들은 평양 근처에서 고구려군에게 공격을 받아 거의 전멸하였습니다. 이로써 수나라의 30만 대군은 제 1차전에서 완전히 패하고 말았습니다. 9월에 수나라로 돌아간 군사는 겨우 10만 명에 한두 사람밖에 안 되었습니다. 영양왕 11년, 태학 박사 이문진은 왕명을 받아서, 우리 나라 고대 역사를 정리하여 신집 5권을 만들었습니다. 건국 초기에 문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사람이 비로소 기사를 기록한 `유기`라는 1백 권의 책이 있었는데, 이것을 5권의 신집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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