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혜공왕 대 정치적 변혁 재고찰
- 최초 등록일
- 2011.06.16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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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 레포트는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신라 중대와 신라 하대의 정치적 구분을 권력이 시중에 있는지 상대등에게 있는지 구분한 견해를 비판학 레포트 입니다. 종래에는 신라 중대 왕권의 힘이 강했을 때는 시중의 힘이 강하고, 귀족 세력의 대표인 상대등은 힘이 약했지만, 신라 하대 왕권이 미약해지만서 시중의 힘이 약화되고, 귀족 세력의 수장인 상대등의 힘이 강해진다는 도식은 이기백 교수의 견해였고, 이것이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이 성립 가능할까에 의문을 품은 여러 교수들 중 이영호 교수의 견해를 많이 참고하여 이기백 교수의 견해를 비판했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① 신라 中代와 下代의 문제 - 이기백의 견해
② 신라 中代와 下代의 문제 - 이영호의 이견
3. 결론
본문내용
통일신라사 연구는 대체로 정치사를 위주로, 특히 중대의 왕권과 정치체제 및 하대의 정치상황에 집중연구 되어왔다. 이는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의 여러 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때문에 중대 정치사를 해명하려는 연구는 일찍이 있어왔는데, 이기백의 연구가 그것이다. 이기백은 신라 중대 말의 정치적 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중대의 정치적 성격을 밝히려 했는데, 화백회의를 중심으로 전개된 상대의 귀족연합 정치가 무너지고 집사부를 주심으로 국왕에게 집중된 전제왕권이 형성된 시대라는 이기백의 견해가 한국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을 이루었다. 이기백의 이러한 견해는 1958년『新羅 惠恭王代 政治的 變革』을 발표한 이후, 그의 신라사 연구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된 것이다. 즉 신라 천년 사를 귀족연합 - 전제왕권 - 귀족연립으로 전환되어나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대는 전제왕권확립기라고 본 이기백의 견해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바로 중대 정치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론의 변화로 말미암은 비판인 것이다. 방법론으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중심의 문헌자료 뿐만 아니라 금석문 자료도 아울러 살펴보는 것이 그것이다. 또 시각상의 변화는 이기백이 신라의 정치사를 지나치게 도식화하였다는 비판과 함께 다른 연구자들 또한 이기백의 견해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도식화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신라 중대를 새로이 조명한 것이 그것이다. 또 그간 통설화되어 오늘날까지 일선 학교 교과서 내용에 실리고 있는 견해에서 진일보하여 신라 중대의 정치는 전제왕권의 성립이 불가능했다는 견해까지 제기되었다. 즉, 중대의 정치는 진골귀족 중심의 지배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진골귀족들과 전제정치를 시도하려는 국왕 간의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는 시기였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본 레포트에서는 이기백의 『新羅 惠恭王代 政治的 變革』논문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제 학자의 견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레포트를 통해 50여 년을 풍미해온 이기백의 기념비적인『新羅 惠恭王代 政治的 變革』다시 음미해보고, 현재 신라 중대정치사의 동향을 파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