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형성 - 최승로의 時務二十八條와 유교사상
- 최초 등록일
- 2011.06.20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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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승로의 훈요십죠에대한 해석및 분석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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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대적 배경
태조 왕건은 나말여초의 혼란기를 정리, 통합 하였지만 고려가 건국된 후에도 각지의 호족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독립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시기는 정국의 불안을 면할 수가 없었던 때였고 태조에게 부과된 가장 큰 문제는 호족세력을 회유하여 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태조의 호족 연합정책으로 왕권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아직 호족들에게 여지를 남겨놓은 불안한 정세였으므로 태조 사후에도 왕권은 아직 시련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후대의 왕들은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해야 했다. 광종 대에서 성종대에 이르는 이 시기는 중앙집권체제 강화를 위해서 국가체제를 정비하던 시기로 이들은 유교정치이념을 내세워 그 체제를 정비하려 하였다. 사성적으로도 성종에 의해 통치체제가 완비될 때까지 유불도가 혼재되어 왔지만 성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유교적 정치사상이 확립된 것이다. 이렇듯 고려의 유교정치사상이 완성된 성종대 최승로의 시무28조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최승로는 신라6두품 출신이었기 때문에 유교적 이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그와 같은 6두품 유학자들의 중용으로 성종은 태조에서부터 시작된 유교정치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유교의 역할과 기능
유교사상은 현실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통치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제공할 수 있었다. 도덕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덕치를 주장하는 유교의 이념은 과거제도, 교육제도, 정치체제의 확립과 같은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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