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성의 육경개사설
- 최초 등록일
- 2011.06.22
- 최종 저작일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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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학성의 육경개사설 요약
목차
1. 장학성의 생애
2. 장학성의 『문사통의(文史通義)』
3. 장학성의 육경개사설(六經皆史說)
1) 육경개사설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
2)육경개사설(六經皆史說)
3) 육경개사의 의의(意義)
본문내용
1. 장학성의 생애
장학성은 18세기 청나라 중기의 역사학자로, 황종희 학통의 절동학파를 대성시켰다. 장학성은 1760년 과거에 낙방하고 주균(朱筠, 자는 竹君)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명을 떨치고 당대 일류학자들과 교유하였다. 1777년 진사(進士)가 되어 국자감전적(國子監典籍)을 지냈으나 곧 물러났고, 가세가 빈한하여 허난[河南]·산둥[山東]의 서원(書院)에서 후진을 가르치면서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문사통의(文史通義)』 내·외편 8권과 『교수통의(校通義)』 3권이 있으며,『화주지(和州志)』,『영청현지(永淸縣志)』,『호북통지(湖北通志)』,『사적고(史籍考)』 등의 편찬도 있다. 고증학(考證學) 전성시대에 독자적인 역사이론을 전개하는 한편, 지방지(地方志) 작성에도 독특한 식견을 발휘하였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33380
2. 장학성의 『문사통의(文史通義)』
『문사통의』는 사통과 함께 중국 사학 이론의 쌍벽으로 불리는데 장학성의 세계관과 역사관, 문학관이 내포된 작품이다. 역사학에 관해서는 "육경(六經)이 모두 역사"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감추어진 역사나 언급하지 않은 사실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학을 찬집(撰集)과 저술의 두 종류로 분류했는데, 저술은 자기 나름대로의 역사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743314
3. 장학성의 육경개사설(六經皆史說)
1) 육경개사설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
건가 시기의 학술계의 조류는 통치자들이 여전히 송명 이학을 정종으로 받들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음운, 훈고, 고증위주의 한학이 가장 흥성하였다. 한학은 비록 경사의 고서를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업적을 만들어 냈지만 말류의 학자들은 그 본의를 버리고 오로지 훈고, 고증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학문이란 다른 것이 없고 고증을 모든 것이라고 여겼다. 장학성은 송명 이학이나 한학에 대하여 모두 불만이었다. 그러므로 불량한 학풍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장학성은 송명 이학이 의리만 공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 폐단을 지적하고 고증만 하는 한학에 대하여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참고 자료
고국항, 『중국사햑사 하(下)』, 풀빛, 1998
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0
유절, 『중국사학사 강의』, 신서원, 2000
탁용국, 『中國 史學史 大要』, 탐구당, 1986
http://100.naver.com/100.nhn?docid=743314
http://100.naver.com/100.nhn?docid=133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