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애국신앙가 김교신(A+ 과제)
- 최초 등록일
- 2011.06.24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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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표 a+ 맞은 과제입니다.
목차
1. 서론
2. 김교신의 생애
3. 김교신의 활동사항
4. 김교신의 사상
5. 김교신의 업적
본문내용
1. 서론
김교신(1901-1945)은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를 “강직한 마음과 맑은 신앙, 엄격한 계율적 생활과 수도사 적 청빈함이 몸매에 넘치던 예레미야와 같은 눈물의 애국 신앙가”라고 묘사한 분도 있었다.
김교신은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를 추구했다. 어떤 이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판인데 교회까지 일본의 영향 아래 있어야 하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김교신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라 사랑과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함석헌 등과 함께 창간한 『성서조선』때문이었다.
2. 김교신의 생애
함경남도 함흥 출신. 태종 때 함흥차사 박순과 함께 함흥에 갔다가 다행히 죽음을면하고 정평에 자리잡은 김덕재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김염희, 어머니는 양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함흥보통학교와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 동경세이소쿠영어학교에 들어갔다. 1922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지리·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생애를 살았고, 죽는 날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관심을 모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진정한 교사상’을 보였다.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로는 동요 작가 윤석중, 마라토너 손기정, 농학자이며 수필가인 유달영, 독립 운동가 김용준 등이 있다. 김교신은 교사로 평생을 살았지만 출옥 후 1944년에 함흥 질소 비료 공장에 입사하여 노동자들에게 민족혼을 고취시키다가 광복을 눈앞에 두고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