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악이 되는 패러독스 극복하기 -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1.06.26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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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던 사람
기부 천사, 유명한 연예인, 유명한 작가들..
정치인이 되기 전 그들은 명망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치인이 되고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은 변해간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정치를 맡겨야 하는가
권력을 잡게 되면 악하게 되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믿고 민주주의 투표를 해야 하는 패러독스.
이것에 대한 해결을 생각해 본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의 수가 적고 성별이나 계급 조건이 있긴 했지만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였다. 시민들은 각자 정부 기구의 구성 요인이었으며, 중요 사안에 대해서 모두가 함께 토론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을 정치적 인간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의 미덕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공화정 국가는 시민 모두의 정치 참여가 불가능하다. 도시국가와 달리 시민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토론해야 할 사안도 복잡하고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공화정은 시민들의 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시민의 역할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즉,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 같은 정치가는 시민의 기대에 따라 뽑힌 사람인 것이다.
이런 정치가들을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만큼, 시민들의 기대에 따라서 행동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가들은 시민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받아온 문제에 대한 법안을 제출하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사안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들은 당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시민들이 납득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현 정권 하에서만 보아도 용산 참사 사건, 세종시와 같은 국책 사업에 대한 대립 등에서 정치가들은 시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인기나 당의 정책에 따라 행동하였다.
그 결과 용산 참사의 철거민들과 같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자율적으로 시민을 위해 행동할 것으로 여겨졌던 정치가들이 오히려 시민을 외면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들이 시민을 소외시키는 정치를 펼친다고 해도 시민들은 정치가들을 제재할 수 없다. 시민들은 그저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언론과 같은 매체가 시민을 대신하여 정치가들을 감시한다고 하지만 언론은 권력과 유착된다. 촘스키는 언론 권력이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정치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보만 대중에게 전달한다고 비판해왔다. 실제로 언론이 여론을 조종하는 사례는 많다. 정치인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연예인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든지 정치적 문제 사안의 여론화를 애초에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예가 그것이다.
참고 자료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하버마스와 아렌트에 대한 논문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