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의 외교관계
- 최초 등록일
- 2011.07.09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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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중기의 외교관계 - 외교전문가 광해군
목차
Ⅰ. 서론
Ⅱ. 광해군의 외교정치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에게는 아직도 `패륜아`. `폭군` 등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청 교체기, 혼란의 시대에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광해군은 그가 왕위에 있던 17세기 명・청 교체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탁월한 ‘중립외교’, ‘실리외교’를 통해 명과 청,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던 임금이다. 그는 오늘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열강의 입김아래 헤매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반영하여 볼 때 그는 우리 역사상 얼마 되지 않는 `외교 전문가`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역사에서의 광해군의 평가는 매우 극단적이었다. 일제시대의 한국사를 연구했던 이나바 이와키치와 다카와 고조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나바는 광해군이 명・후금 관계를 세밀하게 살핀 뒤, 명과 후금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 했던 광해군을 ‘택민주의자(澤民主義者)’ 라고 찬양했으며, 광해군과 달리 명의 편에 서서 후금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당시의 신하들을 ‘명분론자(名分論者)’ 라고 비판하였다. 여기서 ‘택민주의’는 중립적인 외교를 통해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부정적인 평가의 경우에는 인조반정을 성공시켜 광해군을 쫓아냈던 서인들의 집권이 이어진 상황에서 광해군에 대한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죽이기를 계속함으로써 그의 본 모습을 가리는 측면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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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임진왜란사』,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7
한명기,『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한명기,『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