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강목』에 대한 사학사적 소고
- 최초 등록일
- 2011.07.17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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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희와 자치통감강목에 대해 자세하게 레포트한 파일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朱熹의 生涯
Ⅲ. 『資治通鑑綱目』의 特徵
Ⅳ. 『資治通鑑綱目』의 意義
Ⅴ. 맺음말
본문내용
I. 머리말
중국의 사서 체제는 紀傳體와 編年體 이외에 紀事本末體와 綱目體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체제는 『資治通鑑』을 개편하여 구체화시킨 것으로 `통감학`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袁樞의 『通鑑紀事本末』과 朱熹의 『資治通鑑綱目』이다.
물론 기사본말체는 기전이나 편년의 단점을 극복하여 편년체의 연대를 經으로 삼아 시간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인물 또한 사건 중심의 주제에 관하여 그 본말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선진 시대에 이미 나타났으며 한 대에 본말체 형식의 서술이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전문적인 본말체의 형식을 빌린 것은 남송 시대부터였고, 강목체도 선진 시대에 나타났으며 주희도 강(綱)은 『春秋』를 모방하고 목(目)은 『左氏傳』을 받아들였다고 하듯이 이미 있었던 서술방법이었다.
『資治通鑑綱目』은 『通鑑綱目』,『綱目』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編年體 史書이다. 이 글에서는 이 史書의 저자인 朱子의 생애와 『資治通鑑綱目』의 내용과 그 특징 등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자 한다.
II. 朱熹의 生涯
朱子(朱熹, 1130~1200)는 자가 元晦, 호가 晦庵으로 祖籍은 徽州 婺源(강서 무원)사람이다. 명문 집안 출신으로 후에 복건 建陽에서 살았다. 남송 소홍 18년(1148)에 진사가 처음에 泉州, 同安縣 主簿가 되고 전운부사와 秘閣, 修撰을 역임하였다. 주희의 생애는 강학과 저술로 일관하여 전적에 주(注)를 달고 경학, 문학, 사학, 자연과학에 상당한 연구가 있었다. 소홍 30년(1160)에 程頤의 3대 제자인 李侗을 스승으로 삼아 유가의 계보상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즉 宋代 儒家의 학술사상인 이학을 집대성하였고, 元 ․ 明․ 淸대에 그의 이학은 유학의 正宗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학에서 주희는 『통감강목』을 지어 이학을 운용하여 사학을 개조하려 하였다. 그는 `이(理)`를 표준으로 이전의 역사서를 평가하였는데, 이 이(理)는 바로 三綱五常, 윤리도덕의 昇華였다. 따라서 그는 『좌전』을 비판하여 화복이해(禍福利害)만을 얘기하고 `義`는 말하고 있지 않아 `이(理)`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기』에 대하여도 성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 설에 따랐기 때문에 내용이 얕고 소략하며 `義理`를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자치통감』에 대하여도 의리상 미진하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
오향녕, 『성리학 역사서의 형성과 구조』, 한국실학학회. 2003.
오항녕, 조선초기 경연의 『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 』 강의,한국사학사학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