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1.07.19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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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시간에 작성된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읽고, 독후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춘원 이광수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이광수는 독립선언문의 집필자이며, 상하이 임시정부 각료급이자 임시정부의 대변지 ‘독립신문’ 사장이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독립을 향한 의지가 컸지만 그는 문화통치 때 변절 하여 자치운동론에 힘을 썼다고 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왜 그렇게 독립운동에 힘쓰던 그가 어떠한 이유로 변절 하였는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또 그 당시 강력한 제국주의였던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지식인으로써 독립 대신 자치를 주장한 그의 생각을 아주 이해하지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한국사 레포트를 위한 주제를 생각하면서 그간 궁금했었던 이광수의 생애에 대해 조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광수는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아버지 이종원과 어머니 충주 김씨의 3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적 이름은 이보경이다. 춘원이라는 아호 외에 고주(孤舟)·외배라는 별호도 있다. 5세에 한글과 천자문을 깨치고 8세에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가세가 기울자 담배 장사를 하던 중, 그의 부모는 이광수가 11세가 되던 해(1902년 8월)에 전염병 콜레라로 별세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이후의 그의 성장 과정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누이동생 둘과 고아가 되어 외가와 재당숙 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자랐다. 이광수는 일찍부터 문필과 관련이 되는 직업에 종사하였으며, 1903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박찬명 대령의 집에 기숙하면서 도쿄와 한성부에서 오는 문서를 베끼고 배포하는 일을 했다. 그 뒤 재능을 인정받아 천도교의 서기일을 맡아 보기도 했다. 결국 이로 인해 그의 나이 14살 때 손병희를 만나 일본 유학생으로 뽑히게 된다.
참고 자료
김윤식 『이광수(李光洙와 그의 시대(時代』, 한길사, 1986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