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의 편사정신(編史精神)은 성리학적 명분론을 기본으로 하여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삼국사절요』는 권근의 『동국사략(東國史略)』처럼 이 시기 다른 사서들에 성리학적 명분론이 강하게 투영된 것과 비교해, 조금은 덜 유교적이고, 덜 성리학적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절요』는 성종(成宗) 7년(1476)에 노사신, 서거정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단군조선부터 삼국의 멸망까지를 다룬 역사서로, 원래는 세조(世祖)가 명을 내린 『동국통감(東國通鑑)』의 편찬 과정의 중간 수확물이다. 이 때, 세조의 탈 성리학적 수찬의도가 반영됨으로써 완벽한 유교사서의 성격은 벗어나게 되었지만, 세조의 의도가 완벽하게 담기지는 못했다. 여기서는 세조를 비롯한 후대 관인들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절요의 편찬 과정과, 그 내용, 그리고 당시 여러 시대 상황의 영향을 받은 이 사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목차
< 목 차 >
1. 머 리 말
2. 본 론
1) 『삼국사절요』의 편찬배경과 목적
2) 『삼국사절요』의 내용의 성격과 서술상 특징
3) 『삼국사절요』의 사학사적 의미
3. 맺 음 말
본문내용
1. 머 리 말
조선시대의 편사정신(編史精神)은 성리학적 명분론을 기본으로 하여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삼국사절요』는 권근의 『동국사략(東國史略)』 권근의 『동국사략 (東國史略)』: 삼국사기를 저본으로 하여 삼국사를 가치중심으로 재해석하되,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김부식보다 더 철저한 사대적 명분론을 가지고 한국고대사를 재구성하였다. 단군조선과 삼한의 계승관계에 있어서는 중국계 이주민의 활동을 중시하여 역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내로 축소시키는 단선적인 역사인식을 지니는데, 이같은 삼국이전 역사인식은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으로 계승된다.
처럼 이 시기 다른 사서들에 성리학적 명분론이 강하게 투영된 것과 비교해, 조금은 덜 유교적이고, 덜 성리학적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절요』는 성종(成宗) 7년(1476)에 노사신, 서거정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단군조선부터 삼국의 멸망까지를 다룬 역사서로, 원래는 세조(世祖)가 명을 내린 『동국통감(東國通鑑)』의 편찬 과정의 중간 수확물이다. 이 때, 세조의 탈 성리학적 수찬의도가 반영됨으로써 완벽한 유교사서의 성격은 벗어나게 되었지만, 세조의 의도가 완벽하게 담기지는 못했다. 여기서는 세조를 비롯한 후대 관인들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절요의 편찬 과정과, 그 내용, 그리고 당시 여러 시대 상황의 영향을 받은 이 사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2. 본 론
1) 『삼국사절요』의 편찬과정과 목적
- 『동국통감』으로부터 시작된 『삼국사절요』
조선왕조 건국 이후 점차 사회가 안정되어 가면서, 세종~성종 연대를 거쳐 각종 편찬사업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편찬 사업은 왕명에 의해 관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특히 역사편찬 사업에 있어서 당대사의 정리인 실록 등은 국가에 의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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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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