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성학십도
- 최초 등록일
- 2011.07.30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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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황 성학십도 리포트
목차
1. 들어가며
- “10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성학십도” 읽은 동기
2. 본 론
1) 퇴계 이황
- 이황의 연대기
2) 이황의 사상
- 이황의 주요사상
3) 성학십도(聖學十道)
- 1. 태극도(太極圖) ~ 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까지 내용요약
3. 나오며
- 성학십도를 읽은 후 독서 감상 편
본문내용
1. 들어가며
2년 전 따뜻한 어느 봄날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도산서원을 들린 적이 있었는데 안동의 주요관광지로서 안동을 들리면 한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안동지방에서는 유명한 곳이라 어떤 기대감보다는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눈에 들어선 입장권 판매소 그 뒤로 연결된 비포장 길... 그리고 그 너머에 흔히 1000원짜리 지폐에서 볼 수 있었던 도산서원의 전경이 펼쳐졌다. 서원은 정갈하게 잘 보전 되어 있었다. 짜임새 있는 건물과 따뜻한 해가 잘 드는 마당과 정원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국사나 윤리 책 모서리쯤에 나왔던 사진들이 실물로 보여 지고 있었다. 그 중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그림으로서 후학들에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이황의 노력이었다. 유학자하면 한문이 먼저 떠오르고 문자로 가득한 책이 떠오르는데 이황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후학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니, 정말 그 당시 생각이 트인 사상가라는 감동이 전해졌다. 어떤 말 할 수 없는 뿌듯함과 우리 학문의 새로운 발견 등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 ‘교육고전의 이해’ 과목을 수강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소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직접 눈으로 봤던 소외와 다시금 최영감이 풀어 쓴 ‘10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성학십도’를 통해 좀 더 학술적으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다시 한 번 이황의 세계에 빠져보려 한다.
2. 본 론
1) 퇴계 이황
이황은 1501년(조선 연산군 7년) 경북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528년(중종 23)에 소과에 입격하고 1533년(중종 28) 성균관에 들어가 이듬해인 153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자(正字)·박사(博士)·전적(典籍)·호조좌랑을 거쳐 1539년(중종 34)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화를 입어 한때 파직되었다가 복직하였으나, 이미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을 때이므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일찍 그가 서울에 있을 때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고 여기 몰두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여, 마침내 대성하여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사방에서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배웠다. 비록 조정의 부름이 있더라도 관직에 오래 머물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외직(外職)을 자청하였다. 명종 초에 단양(丹陽)·풍기(豊基) 등의 군수를 역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1550년 풍기 군수 시절에 소수서원(당시 백운동서원) 사액을 실현시켰다.
참고 자료
1. 이황,「성학십도 :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풀빛, 2005.
2. 금장태,「聖學十圖와 퇴계철학의 구조」, 서울대학교, 2001.
3. 퇴계학연구원,「聖學十圖釋解」, 퇴계학연구원,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