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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1.08.22
- 최종 저작일
-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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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데카르트의 생애, 데카르트의 철학, 데카르트의 이원론, 데카르트의 감정미학, 데카르트의 방법적회의, 데카르트의 영향 분석
목차
Ⅰ. 개요
Ⅱ. 데카르트의 생애
Ⅲ. 데카르트의 철학
Ⅳ. 데카르트의 이원론
Ⅴ. 데카르트의 감정미학
Ⅵ. 데카르트의 방법적회의
Ⅶ. 데카르트의 영향
본문내용
Ⅰ. 개요
데카르트(1596-1650)는 투랑의 라에이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8세 때 라플레쉬의 예수회 학교에 보내졌다. 아침 늦게까지 잠자는 버릇을 익힌 것은 그 곳에서였다고 한다(처음에는 건강상의 이유였지만). 한편 이런 아침의 명상적인 시간은 후에 데카르트에게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 되기도 했다. 1612년에 학교를 떠나 얼마 되지 않아 파리로 갔는데 메르센과 미도르주와 함께 수학연구에 시간을 보냈다. 1617년 군대에 들어가서 30년 전쟁의 보헤미아 원정과 헝가리 정벌에 참가했다. 군 생활을 그만두고 4,5년간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그 후 다시 파리에 1,2년 동안 정착하여 다시 수학과 철학을 탐구했으며, 광학적인 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전성기를 거기서 보냈으며 철학과 수학과 과학의 탐구에 40년을 보냈다. 1649년에는 스웨덴 여왕의 초청으로 마지못해 스톡홀름을 방문했는데 수개월 후에 폐에 염증이 생겨 1650년 2월 11일 스톡홀롬에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스웨덴에서 장례를 치르고 프랑스로 이장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7년 후에 데카르트의 유해는(오른 손목뼈를 빼고)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 있는 판테온 신전에 안치되었다. 오른 손목뼈는 당시 뼈 운반을 주선한 프랑스의 왕실 재정담당 장관이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저술활동을 하였는데 처음 4년간은 을 쓰는 일이었다. 이 저작에서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이론에 의거하여, 빛의 현상에서부터 행성의 생성을 거쳐 인간에 이르는 우주의 생동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이 논문은 1633년에 인쇄에 들어갈 번했으나 갈릴레오의 가 교황청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아 자신의 학설을 어쩔 수 없이 철회했던 때였으므로 데카르트는 갑작스레 자신에게도 닥칠 위험에 직면하여 발표를 단념했다. 이 저술은 그가 죽은 후 14년이 지나서야 출판되었다. 그는 다시 철학적인 논문에 열중했는데 그 저술의 일부가 1637년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저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주저에 해당하는 것이 보통 이라고 불리는 이며 여기에는 세 개의 부록이 있는데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중 데카르트가 해석기하에 기여한 것은 세 번째 부록이다.
참고 자료
김문자 외 -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본문1권, 선곡집1권, 심설당
동아 출판사(1982) -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존 코팅엄 - 데카르트, 궁리필로소피
전지호(1998) - 음악적 공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음악학 박사학위논문
F. J. Lehman(1976) - 음악형식과 분석, 수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