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11.08.30
- 최종 저작일
- 2008.12
- 2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한국성결교회사입니다.
목차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 (1907 - 21)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성결교회 시대 (1921-45)
본문내용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 (1907 - 21)
제4장. 한국선교의 준비.
한국 성결교회는 1907년에 시작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개신교 대부분은 일본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국선교를 시작하였고, 구세군과 안식교도 일본을 통하여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도 마찬가지이다.
4.1 나까다 쥬지의 방한
<배경> 한국과 동양선교회의 최초의 접촉은 (동양선교회 창시자의 한 사람) 나까다 쥬지를 통해서이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는 한국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그들의 침략이 단순히 무력으로만 되지 않고, 정신적인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목적으로 대륙침략전쟁을 지지했던 복음동맹회에서는 혼다 요이찌와 나까다 쥬지를 종군목사로 파송하게 된다.(1904년)
<전도방법> 이들은 서울에서 한국인 통역인을 데리고 다니며 북쪽의 전선을 향해 갔다. 그들은 서울에서 출발하면서부터 기회가 닿는 대로 집회를 열었다. 평양에 1800명의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장로교회 혼다 요이찌는 머무렀고, 나까다는 계속 북진하였다. 그러다 결국 만주에 이르러 전선에 너무 가까이 이르렀다는 이유로 다시 서울로 향해야 했다. (약 2개월 반의 과정) 그 과정에서 그는 계속해서 기회가 되는 대로 집회를 가졌다.
<평가> 나까다의 전도여행은 전형적인 성결운동가의 모습이었다. 그는 한국에 이미 재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있음을 보았으나 (재림이 전파된 대에는 전쟁으로 인한 영향력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결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주목하였다. (그는 한국인의 흰옷 비유를 들어 성결에 대해 강조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1. 한국이 의료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기존의 의료선교사들을 높이평가 하면서도, (간접선교) 이것이 진정으로 한국인의 영혼을 위해서 유익이 되는지에대해서는 회의했다. 2. 토착사역자들을 양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