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S 05 기술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질문
- 최초 등록일
- 2011.09.15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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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상하다. 분위기는 이토록 좋은데, 다른 한 켠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리는 듯도 하다. 타이피스트 가장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교과서에 나오는 노동의 산업간 이동은 아쉽게도 현실에서 그리 간단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또 어디선가는 혼자라는 마음에, 외로운 마음에(고작 이 때문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들은 거기서 동지를 만나 위안을 얻게 될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생활 저변의 곳곳에 포진한 오늘날이지만, 파발마를 보내고 봉화를 올리던 조선시대에도 없던 말인 ‘고독사’라는 용어가 생겨난다. 그러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24시간 이어지는 업무로 인해 외로워 할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더 이상 샐러리맨에게 실질적인 퇴근을 허하지 않는다. 그렇다. 기술은 발전했다. 그렇다면 나의, 당신의, 우리의 삶은 발전했는가? 왜 질문을 하는가? 발전의 트랙에 올라타서 질주하지 않고 느긋하게 질문이나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어쩌면 타인의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장식품일지도 모른다. 굳이 발음도 어려운 미셸 푸코나 데리다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나 자신의 삶을 보건대 내게 주어진 객관성과 기존의 도그마를 성찰해야 할 필요를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절실히 느끼기에 질문을 던진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의 삶을 보며 불안을 느끼기에, 지구 어느 곳에서건 페이스북에 접속을 할 수 있음에도 내 바로 곁의 빈자리를 느끼기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일거리가 나를 짓누르기에 질문을 던진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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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맞다. 기술적 기술은 발전했다.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또는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사회적 기술은 정체되었거나 퇴보했다. 데이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개인을 연결하는 선들로 공동체라는 면을 만들어 사회라는 입체를 세우는 기술은 기술적 진화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왜 질문을 하느냐 물었던가. 이대로 쓸려가기에는 기술적 발전의 조류가 너무나도 거대하여 그런다. 미약한 개인이 함부로 올라탔다가는 삶이 송두리째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바뀌지나 않을까 두려워 그런다.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 의사소통, 뜻과 생각을 트고 통하게 하고 싶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공동체의,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서다. 내가 여기에 있음을, 존재함을 부르짖어 실존하는 너와 함께 우리를 구성하고 싶어서다.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TCP/IP가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장某, 이某가 서로 만나 - 이 만남만큼은 기술적 기술의 은혜를 빌려도 좋다 - 우리를 정의하고, 삶을 고민하고, 어떤 내일을 만들지 스스로 택하고 싶어 질문을 던진다. 단, 답은 아직 모른다. 못 찾을지도 모른다. 또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질문이 의미 있는 까닭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비록 사과나무는 없지만, 내일 또 다시 취업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외로움을 곱씹으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를 보낼지라도 나는 오늘 한 마디의 질문을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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