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사태
- 최초 등록일
- 2011.09.22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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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한은행사태
목차
1. 신한 은행 사태 정리
2.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 분석
1) 정치적 배경
2) 경제적 배경
3) 사회적 배경
3. 주요 공중분석
- 신한 은행 고객, 일반 시민, 시민 단체,
주주, 이사회, 사원
4. 잘한 점과 못한 점
5. 고객이 미래에 해야 할 일
- PR도 신한 WAY대로 해야 한다
6. 교훈
본문내용
신한은행 사태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시발점이 된 2009년 3월의 모습 부터 봐야한다. 2009년 3월 검찰은 라응찬 회장이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에게 50억원을 건넨 혐의를 포착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또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 않았고, 라 회장은 네 번째 연임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8월 신한은행
경영진 내부의 갈등이 발생하면서 여론이 집중되었고 신한은행에 대한 정권의 비호를 의심하는 론과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은 라 회장의 금융 실명제 법 위한혐의에 대해서 조사를 착수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신한은행은 신상훈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 했는데 이에 재일동포 사외이사 4명과 일본 주주들이 신사장 해임 반대 결의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경영진간의 사태가 일본까지 확산되자 신한은행측은 일본 나고야로 가서 주주들을 는 노력을 했지만 국내 주주들에 대한 조취들은 취해지지 않아 국내 여론은 악화되었다. 또한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던 일본 주주들 역시 13일이백순 행장 해임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 졌다. 이 사태를 신속히 진정시키고자 했던 이사회는 14일 회의를 열고 신상훈 사장의 직무정지를 결정했는데 라회장이 신상훈 회장의 직무를 대행하면서 조직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부단히 보여주었다.하지만 10월 7일 금감원이 라회장에게 중징계 결정을 통보했는데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을 듣고 귀국한 회장이 입국한지 3일만에 뚜렷한 입장 표명 없이 다시 출국하여 여론이 악화되었다.
몇 일뒤 있을 국감에서 증인 출석의 요구를 업무상 이유로 거부하면서 정치권의 의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던 라응찬 회장은 10월 30일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퇴를 결정했는데 이번 사퇴로 신한은행 경영 구조의 불안을 막기 위해서 류시열 신한금융 이사가 대표이사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됐다. 또한 이사회의 차원에서 9명의 이사들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직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했다.
결국 라응찬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도 조직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11월 2일 검찰이 라 회장과 신 사장 그리고 이 행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했는데 11월 26일 신한지주는 도진사, 양용웅, 양호명, 박충홍이 이백순, 신한금융지주회사, 신한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해임청구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부터 원고의 소취하 판결을 받았다고 26일 공시했다. 즉 원고는 소를 취하하고 피고는 원고의 소취하에 동의하면서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