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의 윤리
- 최초 등록일
- 2011.09.27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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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효,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윤리학적 관점을 현대사회와 접목시킨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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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원효,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윤리학
- 인문학 경시풍조 속에서, 원효와 같은 결단력을 가져야 할 때이다 -
몇일 전, 뮤지컬 ‘원효’를 보았다. 교내에서 4년 동안 숱하게 배우고, 들었던 원효. 그러나 정작 윤리학도로서 나는 원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듯이, 딱 그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작은 윤리학’의 자유과제로서 원효와 윤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탐구하고자 한다.
분황 원효(617-686), 그는 법호가 분황(芬皇)이며, 법명이 원효(元曉)이다. 분황이란 연꽃 중의 연꽃을 일컫고, 원효는 첫 새벽이다. 이름 그대로 민족의 첫새벽을 열어간 원효는 신라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 현재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동(誓幢)이라 하였다. 서당은 `첫새벽`을 뜻하는데 그의 의미 그대로 비단 한국의 불교사상 만이 아니라 철학사상 일반에 있어서도 큰 새벽을 연 밝은 별로서 한국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불교사에 있어서 그의 위치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원효는 일찍이 10세미만의 어린 나이로 출가하여 일정한 스승 없이, 일정한 거처도 없이 공부하다가 34세에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시도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1년 뒤인 45세 무렵 늦은 나이임에도 유학을 시도하였다. 그만큼 배움에 대한 정열이 가득했던 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유학 도중에 무덤 속에서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원효는 꿈속에서 동티를 만났다.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 인식의 전환을 노래로 표현했다.
“어젯밤 잠자리는 땅막이라 생각하여 또한 편안했는데, 오늘밤 잠자리는 무덤 속에 의탁하니 매우 뒤숭숭하구나, 알겠도다! 마음이 생겨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또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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