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6세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11.10.12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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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발표한자료입니다.
그중 특히 선비족을 중심으로한 북방민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
I. 여는글
II. 4세기 대외관계
III. 5~6세기 대외관계
IV. 닫는글
★ 참고문헌
본문내용
. 여는 글
중국 역사상 북중국은 이민족지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여러 북방 유목민족들이 흥망을 거듭했다. 서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이들과 접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구려는 그 말기까지 겨레와 국토를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안으로 여러 지방에 대한 통치체제를 튼튼히 세우고 봉건적 제도, 질서를 강화하는 한편 주변지역의 종족, 민족, 나라들의 있을 수 있는 침입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시설을 건설, 정비하여야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북중국의 여러 민족들과의 국제관계는 국가 간의 영향보다도 보다 본원적인 의의인, 대내적인 사회발전에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성장기인 4세기와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5~6세기로 시대를 구분해서 북중국의 유목민족, 그 중 선비족을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의 대외관계에 대하여 알아보려 한다.
Ⅱ. 4세기 대외관계
- 모용씨 "연" 과의 갈등
1. 모용씨의 등장
고구려의 서쪽에서 성장하였던 모용씨는 4세기 고구려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서·요동지방에서 중국세력의 세력약화를 틈타 이 지역에 유입해 온 모용씨는 이후 중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세력집단으로 성장하였다. 후일 이들이 건국한 전연과 후연이 북중국의 패자로서 등장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용씨가 요서지방에 등장하게 된 것은 위나라 초엽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요서지방에는 일찍부터 오환족이 유입해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기 206년 조조가 오환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궤멸시키자, 그 자리에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씨가 유입하였다. 모용씨의 유입과 관련하여『진서』를 보면
증조부인 막호발이 위초에 제부를 이끌고 요서에 들어왔다. 선제를 따라 공손씨를 정벌하는데 공을 세우니 솔의왕에 봉해졌고 비로소 □성의 북방에 나라를 세웠다.
참고 자료
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바다출판사,1999.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1999.
박영규, 『고구려 본기』, 웅진출판사, 1997.
오순제, 『우리고구려 찾아가기』, 다시, 2004.
김부식,정구복,『삼국사기』,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역사연구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