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 논쟁을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11.10.14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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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 논쟁을 비교하고 김종직과 서거정의 주장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1.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논쟁 비교
2. 서거정(徐居正)과 김종직(金宗直)
2.1. 훈구파의 주역 서거정
2.2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 김종직
3.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인들
3.1 훈구파
3.2 사림파
본문내용
1.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논쟁 비교
조선 사대부는 훈구파와 사림파 두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권력과 토지를 차지하여 유리한 고지를 이미 점령한 쪽을 흔히 훈구파라고 한다. 훈구파는 개국 공신이나 개국 후의 공신 또는 그 후예로서 중앙 정계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혜택에서 제외된 지방의 사대부는 중소 지주로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꾀하면서 새 왕조의 창건의 명분을 철저하게 시행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세력을 사림파라고 한다.
훈구파이든 사림파이든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일단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신분 판별과 사회적 지위 결정의 기준인 한문학도 이기(理氣)와 심성(心性)을 따지는 가치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성리학과 문학의 관계를 설정하고 해석하는 기준은 서로 달랐다.
<중 략>
3.2 사림파
지방 중소 지주가 먼저 두각을 나타낸 곳이 영남지방, 그 가운데서도 선산이었다. 길재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도학에 힘썼기에, 정몽주에게서 길재로, 길재에게서 김숙자로 학통이 이어졌다고 하며, 김숙자의 아들인 김종직이 선두에 서서 그 기반을 딛고 정계에 진출하며 문학에서도 훈구파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보이고자 했다. 이런 정몽주에서 김종직으로까지 연결된다는 도통(道統)은 사실이라기보다는 명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종직 이후 그의 제자들과 사림파들을 살펴보면 김종직의 제자들인 유호인, 이주, 남효온, 조위,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과 조광조, 김식, 김정, 김안국 등이 있으며 서경덕 이후의 노선으로는 이언적, 이황, 조식, 이이 등이 있다.
참고 자료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권, 지식산업사, 2005년
김승희, 『서거정의 문학사상 연구』, 단국대 대학원, 1993, 학위논문(석사)
탐구당, 『한국사 11권』,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2000년
김종진, 『16세기 사림파 문학의 연구』, 성균관대 대학원, 2000년 학위논문(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