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전고분군으로 보는 다라국의 성립과 그 국력
- 최초 등록일
- 2011.10.18
- 최종 저작일
- 2008.04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4,500원
소개글
강의: 고적현장실습
과제: 답사 보고서 작성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ⅰ. 다라의 국명과 위치
ⅱ. 다라국의 성립
ⅲ. 다라국의 국력
Ⅲ. 나가는 말
본문내용
1985년 경상대에 의한 합천 옥전 고분군(陜川玉田古墳群) 발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야산이, 또 다른 가야국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답사를 주도했던 조영제 교수(경상대 인문학부)는 이 고분군을 고대 가야의 여러 왕국 중 ‘다라국(多羅國)’의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다라국은 옥전 고분군의 발굴 이전까지 한국의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진 국가였다. 그 이름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없다. 양직공도(梁職貢圖) 백제국사전(百濟國史傳)과 《일본서기(日本書紀)》에만 그 이름이 보일 뿐이다. 다라국의 이름은 찾았으나 그 중심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단언할 만한 확증이 없다. 여기서는 그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다라국의 성립에 관해서는 발굴자인 조영제 교수의 연구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그는 김해 ․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옥전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교하여, 김해 ․ 부산 지역의 가야인들이 5세기 초 고구려의 남정으로 합천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글의 말미에 두 유물을 비교한 사진을 별첨하여 이해를 돕고자 했다.
다시 찾은 이 다라국이 과연 어느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였는지는 ‘국가가 국가로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국가는 국민과 국토와 주권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권 중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을 중심으로 다라국의 국력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 자료
서의식 ․ 강봉룡,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 고조선․ 삼국』, 솔출판사, 200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7』, 199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가야 각국사의 재구성』, 2000.
김태식,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2. 가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2002.
김태식,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3. 왕들의 나라』, 2002.
KBS 역사 스페셜, 『KBS 역사 스페셜 7』, 2004.
韓國史硏究會, 『韓國史硏究 115』, 2001.
합천박물관 홈페이지(http://museum.hc.go.kr/)
역사스페셜 캡처 - 을파소의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myunggyu/60018548884)
양직공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