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맥아더
- 최초 등록일
- 2011.10.27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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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세기 미국의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에 탁월한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샬러가 더글라스 맥아더의 삶과 근대 근동과 미국간의 문제에 대해 분석한 연구서. 1935년 이후에 맥아더가 아시아에서 한 활동에 대한 평가 및 분석을 중심으로 맥아더 개인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이해하였으며, 2차 대전 당시 필리핀과 점령된 일본 및 한국에서 맥아더가 수행한 정책을 아시아 민족주의, 냉전, 미국의 정책 등의 다양한 맥락에서 분석하였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군 지도자였던 맥아더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러니를 파헤쳤으며, 재능, 기회주의, 선견지명, 이기심, 질투 등에 사로잡혔던 맥아더의 생애를 통해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인 개인들까지도 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으려고 노력했던 한 시대를 보여준다.
목차
1 장 장군의 형성
2 장 맥아더와 뉴딜, 1933-35
3 장 필리핀의 육군 원수
4 장 전쟁으로 가는 길, 1937-41
6 장 태평양전쟁과 미국의 정책
7 장 필리핀과 해방정책
8 장 행선지 도쿄
9 장 최고 사령관
10 장 점령하의 일본과 미국의 정치, 1945-49
11 장 혼돈의 경계선 아시아의 냉전
12 장 한국 전쟁 시작되다
13 장 완전히 새로운 전쟁
14 장 사라지다
본문내용
14 장 사라지다
맥아더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14년 동안 보지 못했던 고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보냈다. 의회에서 연설해 달라는 초청을 수락한 장군은 뉴욕에 있는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로 이사할 준비를 하던 중에 공화당이 자신의 해임에 관한 상원의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적으로는 장군은 평생 동안 육군의 현역 명단에 남아 있었고 오성장군 계급과 급여(1951년에 18,000달러)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는 특권 가운데에는 전용 비행기 한 대와 유급 참모진, 뉴욕의 사무실 등도 있었다. 1942년에 마누엘 케손으로부터 받은 50만 달러의 밑천 외에도, 맥아더는 자신의 친구인 레밍턴 랜드 사의 제임스 랜드로부터 회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이런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사심 없는 애국자라는 장군의 이미지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한 허버트 후버는 장군에게 전보를 보내 잠잠해질 때까지 회장직 수락을 뒤로 미루라고 충고했다. 4월 16일, 장군은 전용 비행기(1945년부터 ‘스캅’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름을 ‘바탄’으로 바꾸라고 명령하고는 가족 및 측근들과 함께 도쿄를 떠났다.
맥아더를 소환한 일로 트루먼 대통령은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 일부 성난 시민들은 트루먼의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 불태웠고, 십여 개 주의 의회에서는 맥아더를 지지하거나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보수적인 신문과 정치인들은 정부와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에 유약한 태도를 보인다고 판단한 이들까지도 극렬하게 비판했다. 『시카고트리분』은 트루먼이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선언했고, 뉴욕『저널어메리칸』은 대통령이 국무부의 공산주의 첩자가 투약한 “모종의 정신안정제나 신경완화제”의 영향을 받아 행동한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