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중기사회와 무신정권
- 최초 등록일
- 2011.10.31
- 최종 저작일
- 2011.10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고려중기의 문벌귀족사회의 모순과 무신들에 대한 차별과 무신정권의 성립과정
목차
(1) 고려 중기의 사회모순과 이자겸의 난
(2) 묘청의 난
(3) 무신정변의 원인
(4) 무신정권의 전개과정
본문내용
고려중기사회와 무신정권의 성립
(1) 고려 중기의 사회모순과 이자겸의 난
고려왕조(高麗王朝)의 탄생에는 지방호족들의 협조와 참여에 의해 건국 되어 호족연합정권적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태조(太祖: 918~943)가 호족들과의 혼인정책으로 29명의
부인과 25명의 왕자를 두어, 후계구도에 혼란을 가져 왔는데, 2대왕인 혜종(惠宗)의 왕위계승
과정과 8대왕인 현종의 즉위과정이 그렇다. 태조 사후에 장자인 나주오씨의 아들인 왕무
(王武)가 혜종(惠宗: 943~945)으로 즉위하자 광주(廣州)지방의 호족출신인 왕규(王規)가 자신
의 외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으로 세우려 난을 일으켰다. 그러자 충주유씨의 소생인
왕요(王要)와 왕소(王昭)가 서경(西京)의 왕식렴(王式廉)의 군대를 끌어들여 난을 평정하고
요가 정종(定宗: 945~949)이 즉위하고, 정종이 죽자 동생인 소가 광종(光宗: 949 ~975)이
즉위했다. 그 사이 광종대에 과거제와 노비안검법의 실시 등으로 왕권이 강화 되고, 성종
(成宗: 981~997)대에 중앙 및 지방의 정치체제의 정비로 안정화가 되었으나, 성종 이 후,
목종(穆宗: 997~1009)을 거쳐 현종(顯宗: 1009~1031)의 즉위과정에서 다시 혼란이 일었다.
현종은 태조의 아들인 왕욱(王郁)과 경종(景宗: 975~981)의 왕비였던 헌정왕후(獻貞王后)
사이에 태어났는데, 목종대 권신(權臣) 김치양(金致陽)이 목종의 어머니이자 경종의 또 다른
왕비인 헌애왕후(獻哀王后)와 사통하여 아들을 낳아 대량원군(大良院君)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목종이 먼저 대량원군을 후계로 삼고, 강조(康兆)가 군대를 일으켜 도움으로써, 현종
이 왕위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강조가 목종을 살해하여, 거란이 침공하는 명분을 만들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