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권력 이은상
- 최초 등록일
- 2011.11.0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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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내용요약
2. 개념정리
3. 생각해 볼 문제
4. 발표조 견해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내용요약
노산 이은상은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이은상은 마산창신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일본와세다 대학 사학부와 동양문고에서 사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후 귀국한다. 마산에 돌아와 고향의 노비산에 올려 시조 한 편을 쓰는데 이 시조가「옛 동산에 올라」이다. 이은상은 노비산의 이름을 따라서 자신의 호를 ‘노산’으로 짓는다. 그는 1929년 월간잡지『신생』의 편집장을 한 후, 1931~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동아일보사 기자, 『신가정』편집인,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되는『조광』의 편집주간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홍원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고 한다. 일제 말에 광양에 은신해 있다가 해방이 되자 광주에서 1945년 12월 『호남신문』을 창간, 47년 8월 15일자부터 처음으로 가로쓰기로 종합일간지를 간행했다.
이은상은 일제하에 낭만적 민족주의자로서 전통시조를 계승하여 많은 시조를 창작하였다. 노산의 작품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지한 역사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또 『조광』의 편집주간을 한 것 등 때문에 그의 일제 때 친일 행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입증된 것은 없으므로 일단 기존의 연구결과에 따르기로 한다.
노산은 일찍이 1920년대 후반 카프문학에 대한 국민문학을 주창하고 이에 기초한 작품 활동을 했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북한 공산주의 집단에 대한 분노와 북진통일에 대한 염원을「고지가 바로 저긴데」등을 통해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노산은 이승만 정권 하에서 굵직한 직함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한다.
참고 자료
ㆍ경남도민일보 이은상·조두남논쟁편찬위원회(2006), 『이은상ㆍ조두남 논쟁』, 불휘.
ㆍ노산문학회(1982), 『노산의 문학과 인간』, 서울: 횃불사.
ㆍ조동일(2005),『한국 문학 통사』5, 지식산업사.
ㆍ김복근(1998), “李殷相 時調 硏究”, 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ㆍ황혜정(2009), “경남 마산 지역의 친일의혹 인물과 기념 사업 논쟁 : 이은상·조두남·장지연을 중심으로”,
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