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구조와 역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1.11.09
- 최종 저작일
- 2011.05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경복궁내에 속한 건물들을 소개하고 건물에 담긴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살펴보고 경복궁의 현대적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경복궁의 역사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궁이며 사적 117호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 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 되었다.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때의 궁의 규모는 390여칸으로 크지 않았으며, 수조지소인 근정전이 5칸에 7칸 연생전 3칸, 경성전 3칸 시사지소 인 보평청 5칸 외에 상의원 중추원 삼군부 등이 마련 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두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3대 태종 때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 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하는 신하들을 가까이 두었으며, 경회루 남쪽에 시각을 알리는 보루각을 세우고 궁 서북 모퉁이에 천문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하였으며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
.
..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