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고비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1.11.13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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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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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우선 이윤탁 한글 영비를 이번 레포트의 주제로 선정한 이유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한글이 새겨진 비석이 몇 개 있다.
본문내용
우선 이윤탁 한글 영비를 이번 레포트의 주제로 선정한 이유
한글이 새겨진 우리나라 최초의 석비라는 점에 있어서 역사적 가치고 높고 국어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노원구 주변에 역사적인 가치가 훗날 높아질 수 있는 그러한 문화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한글고비를 레포트의 주제로 정하였다.
`한글고비`라는 이름으로 1974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에 보물 제1524호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제11대 중종(中宗) 때 외교문서를 담당한 승문원(承文院)의 부정자(副正字)를 지낸 이윤탁(李允濯)의 묘비이다. 이윤탁의 셋째 아들인 문건(文楗)이 1535년 지금의 태릉(泰陵)에 조성되어 있던 아버지의 묘를 현위치로 이전하여 어머니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묘비의 비문을 짓고 글씨를 새겨 1536년(중종 31)에 세웠다. 비는 화강암으로 된 사각 받침돌 위에 위쪽 모서리를 비스듬히 다듬은 대리석 직육면체 몸돌을 세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비의 앞면에는 묘주(墓主)의 이름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고비묘갈음지(考妣墓碣陰誌)`라는 제목 아래 묘주의 일대기가 적혀 있다. 비의 양 측면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묘비에 묘의 훼손을 경계하는 글이 세겨져 있는데, 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바로 향우측면 경계문에 중세 한글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 이전의 비석 가운데 한글이 새겨진 것으로는 지금까지 산불됴심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6호)·인흥군 이영 묘역 내 묘표(비지정)·이윤탁 한글 영비 등 모두 3건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이윤탁 한글 영비는 한글이 새겨진 우리나라 최초의 석비라는 점에서 특히 역사적 가치가 높고, 국어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곧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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