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과 국제정세
- 최초 등록일
- 2011.11.16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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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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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세기 중엽 이래 구미 열강은 중화 제국 청에 대한 侵出을 본격적으로 행하였다. 이에 동양의 초 대국 청은 굴복하여 유린당하고 강요된 불평등 조약에 의해 주권 침탈은 더욱 자행되어 갔다. 중화제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구미 열강의 침략은 조선의 조야에 심각한 대외 위기감을 심어 주었다.
그런데, 1860년대에 들어와, 미국 군함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침입하고(1861), 프랑스 군함이 강화도를 일시 점령(병인양요;1866)하는가 하면, 미국 군함이 재침입(신미양요;1871)하여 구미 열강의 침략이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 오자, 종래 막연하고 관념적인 대외 위기감은 조선왕조의 존망까지도 위협하는 현실적인 위기의식으로 발전하였다. 개화파, 위정척사파, 민중종교인 동학의 발생과 전개는 이러한 대외 위기감을 외적 조건으로 하고 있다.
청국과의 宗屬관계속에서 대외문제에 관한 한 청국을 보호막으로 하여 안주하여 왔던 조선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일본 및 구미열강의 침출로 인하여 새로운 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1876년에는 무력에 굴복하여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구미열강에도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갑오농민 전쟁이 발발하였던 1890년대는 내적모순(계급모순)과 외적모순(민족모순)이 연동․결합되어 총체적 모순이 극한점에 이르렀던 때였다. 대내문제인 농민전쟁이 빌미가 되어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1년 뒤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이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 강화와 요동반도 할양에 대하여 「3국간섭」을 단행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여 준다.
당시, 동학 농민군은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히 전개되어 국가가 존망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줄곧 「斥倭洋」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걸어 反침략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 주었고 청일 양군의 파병 사실을 알고서는 「전주화약」을 맺어 「해산」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자행되자 10월에는 다시 봉기하여 제2차 농민전쟁을 일으켜 反日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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