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세사] 조선의 4대 사화
- 최초 등록일
- 2002.10.20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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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 4년 1498)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 10년 1504)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 14년 1519)
을사사화(乙巳士禍 명종 즉위년 1545)
본문내용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사화(士禍)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이후였다. 사화는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 4년 1498),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 10년 1504),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 14년 1519), 을사사화(乙巳士禍 명종 즉위년 1545) 등 네 차례나 되었으며 동일한 형태의 정치현상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거듭된 것은 그 자체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 경제적 발전의 성과로 재지(在地) 중소지주층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이들이 기성 특권 관료층의 정치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보임에 따라 일어난 마찰 이었다.
15세기 후반, 조선 건국을 주도하여 정권을 독점해왔던 훈구세력(勳舊勢力)이 양반 관료제의 모순을 야기하고 있었고, 이에 수반하여 과전법(科田法)의 붕괴와 지주제의 발달, 상품의 유통과 공납제(貢納制)의 모순 심화, 군역제도(軍役制度)의 붕괴, 국제교역의 발달 및 마찰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변화 흐름을 타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사림파(士林派) 였다.
사림파는 재지중소지주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점차 훈구파 지배하에서 야기된 각종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고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비리를 공격하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사이에 대립이 조장되었고, 훈구파에 의한 사림파의 정치적 보복적 성격을 가진 사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무와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대표적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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